어제 4월 16일 지성심 교장선생님과 함께,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전성은 선생님의 " 자녀교육의 알파와 오메가" 란 특강을 들었습니다. 전성은 선생님의 간단한 약력입니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 직속기관인 교육혁신위원장을 지낸 전성은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은 <왜 학교는 불행한가>,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데 하는가>,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라는 제목의 교육 관련 시리즈 책 3권을 펴냈다.
현재 교육의 문제점 보다는, 강연제목대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강의였습니다. 강의 내용을 자체를 옮겨보겠습니다..
앞뒤 문맥이 안맞거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성은:
사회를 튼튼히 지탱하는 것은 정의 입니다. 도덕,삼강오륜, 충효, 반공 이런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참 어렵습니다. 자식 걱정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잘 살아야 합니다.
초등학교는 열심히 놀아야 하는 곳이고, 중학교는 열심히 놀고 틈틈히 공부하는 곳이고, 고등학교는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놀아야 합니다.
그런데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사랑을 제대로 하다가 가는 것입니다.
제가 올해 73세인데, 그래도 이 사랑이 참 어렵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5시에 매일 일어나서 기도를 하는데도,
제가 어떤 제자를 어떤 일이 있어서, 진심으로 그 제자를 마음르로 용서하는데, 6년이 걸렸습니다.
그 6년 동안 용서라는 주제로 설교 조차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사랑을 제대로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이고, 같은 컵에, 같은 물높이를 유지해서 정성을 담아, 커피를 아내에게 대접합니다.
그 커피를 먹으며, 아내가 아침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합니다. 잘 사는 것은 사랑 하나 제대로 하고 가는 것입니다.
부인에게 잘해야 합니다. ( 공감)
정의란, 평등한 것입니다. 골고루 나눠가지는 것입니다. 격차를 줄이는 것입니다.
큰 의미의 정의란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섬기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편이 아내를 섬기는 것,
돈 많은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강같이 흐르도록 해야합니다. 그런 사회가 가장 튼튼한사회입니다.
그 시작은 가정부터 입니다.
그래서 정의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이 있는 가정이 정의로운 가정입니다 .
부모 이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평등이 평등으로, 착취가 공존으로 바뀌어야하는 역사의 흐름에 힘을 보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
인간은 반역사적이 되면 안됩니다. 사람이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고장에 착하기는 한데, 반역사적인 사람 참 많습니다.
요즘 경남에 무상급식 폐지되어 어머니들 길거리에 나와서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반역사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박수를 쳐주거나, 격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반도덕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바람을 피워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반종교적이면 안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종교적이란, 종교를 가져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를 들면, 소위 목사라는 사람이 스님이라는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장애인을 차별하고, 죄인시하거나, 사회적인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종교인이 아닙니다. 반종교적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독립도 못했던 우리나라 시절에, 예수를 믿기 전에 독립부터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그 후에 예수든 부처든 교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역사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반도덕적이어서는 안되고, 반종교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그것을 공부를 해나가는 것이 부모공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참석들과의 질의응답내용입니다.
가정에서는 내 위주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참어 려운 것입니다. 누구가 자기가 섬기는 주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만약 부부가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면, 그것은 서로가 섬기는 주인의 다름이고,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제가 거창에서 약 1만명 이상의 제자를 보았는데 단 1명도 잘못된 아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아이를 망치는 부모만 있을 뿐입니다. 자식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하튼 자식은 평생 내려놓기 힘든 존재입니다. 죽을 때까지 애물단지와 같습니다.
저도 자식이 4명이 있는데, 지금도 참 어렵습니다.
자식은 하늘이, 부모에게 삶공부 제대로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자식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과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은 다릅니다.
자식이 어떤 행동을 할때는 Yes와 NO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일관성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정확히 yes No를 해야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섬기는 주인 (누구나 자기가 섬기는 주인이란 것은 있습니다. ) 이 돈, 출세, 명예 성공과 같은 것이라면, 그 Yes나 No는 틀릴 확률이 높습니다.
통상 7:3 또는 6: 4 정도로 Yes 할 사항이 많은데, 생명에 지장이 있는 행동(예를 들면 불에 손을 갖다 댄다거나) 정도만 No를 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Yes를 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풀어놓되, 안전한 것은 중요합니다.
대학을 갈것인지 말것인지는 아이가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부모는 보통 아이를 5살 아래로 낮춰서 보고, 아이는 스스로는 5살 위로 생각하니, 그 서로를 바라보는 차이는 10살 정도 차이가 나니,아이를 너무 어리게 봅니다 .
자율은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맡기면 아주 잘 합니다. 자율은 인간을 성숙하게 합니다.
가정에서의 자율은 중요합니다. 아이를 믿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뭔가 실수를 반복하고, 쉽게 잊더라도 부모가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을 대하면 됩니다.
어른들은 안까먹나요? 저도 지금도 뭔가를 쉽게 까먹습니다.
홈스쿨링, 부모가 너무 훌륭하다면 괜찮습니다만, 가급적 불합리한 제도의 학교라 할지라도 가급적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곳이 전쟁 빼놓고, 그 다음이 병원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또 성장을 하게됩니다.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이냐? 반역사적, 반도덕적, 반종교적인 아이로 자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그런 세상으로 바꿀 아이로 키워야 하고, 많든, 적든 거기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자율성에서 다양성이 나오고, 다양성에서 창의성이 나옵니다.
이게 잘 쓴 시이다 이렇게 하는 순간 아이들은 그 시를 모방하게 됩니다.
샛별학교는 이기고 지는 것, 잘하고 못하고 이런 것이 없습니다. 학교 축제때 반드시 한반이 모두 함께 올라가서 합창합니다 .
잘 하는 아이들만 뽑아서 노래를 하지 않습니다. 사회를 바꿀 아이들로 키워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경쟁, 우월성에 대한 인정받고 싶어함 아니냐 하는데,
예를 들어 우리말 겨루기 같은 프로그램은 그런 부정적인 의미의 경쟁은 아닙니다. 서로 우리말의 수준을 높이고, 교양을 높이는 것이죠
문제는 승자독식의 구조입니다.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구조.
100m 달리기라면, 꼴찌라도 힘을 다해 들어오는 것이 올바른 사회입니다.
우리가 1,2등을 가려내는 순간 3등부터는, 아예 포기를 해버리는 사회는 올바른 사회가 아닙니다.
지금 비록 사회가 그렇더라도, 학교는 작은 모범이 되는 사회여야 합니다. 가정이 그런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
대안학교, 가재잡고, 도랑치고,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는 대안학교는, 정서적으로는 대단히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의로운 사람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대안이 아닙니다.
반역사적, 반도덕적, 반종교적이라면, 그것은 교육의 본질이 아닙니다. 먼저 인간이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능력위주의 사회에서 인간위주의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 존엄성, 삶의 여유와 기쁨을 누리고,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는 사회, 능력이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의 사회
1년에 20일 정도는 가족들과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
학교의 가치관 보다, 부모의 가치관이 훨씬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잠재적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미우나 고우나, 역사는 그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자식은 자신의 교육을 방해받지 않을 권한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그런 권한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다시한번 이야기 하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주인으로 섬기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제가 가르친 수많은 아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대학을 나온 친구나 나오지 않은 친구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참고로, 전성은 선생님이 한권의 책을 일독을 권하셨는데, ( 대학, 진로와 관련해서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이라는 책입니다. 저도 한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책내용중 직업십계명과 그의 제자.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_ 다큐멘터리스트 박수용
2.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_ 일본의 교수ㆍ시민운동가 장대영
3.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_ 초등교사 김순옥
4.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_ 화훼육종가 이점도
5.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해라_ 교사ㆍ시민운동가 이종진
6.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_ 문화재 복원가 성윤제
저는 특강을 들으면서 전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말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귀절은
'자식을 교육시키려고 하지 말아라, 교육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인간다운 공부 어떻게 하지? 삶이 무엇인지? 이것만 신경써라..' 였습니다.
자식을 교육시키려면 부모가 뭘 해야된다는 것 보다, 부모가 먼저 삶의 모범을 보이는게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