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마지막 코스는 공산성입니다.
이날 아침을 부실하게 김밥00에서 먹어
점심은 공산성 앞 커다랗고 손님도 많은 식당으로 들어가서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공산성에 올랐습니다.
공산성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비석들은
물론 백제시대 유물이 아닙니다.
주로 조선시대 관찰사들의 공덕비 입니다.
예약해두었던 문화해설사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문화유적지 어딜 가든 문화 해설사들이
자원봉사로 다 있습니다.
학생들은 자료 조사를 하면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그냥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랑
해설사 분들의 설명을 듣고 보는 것은 차이가 많습니다.
한 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인용되었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입니다.
공산성도 마찬가지,
그저 휘 둘러보면 여느 공원과 뭐가 달라보이겠습니까?
금강을 옆으로 끼고 있는 경치 좋고 전망 좋은 공원?
여기가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산성이라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이 사비성을 둘째 아들에게 맡기고
태자와 함께 피신을 했던 성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조선 시대에는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가 피난을 와서 머물던 곳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의 이야기도 듣지 못하면.
그러나 1500년 전의 백제 이야기가 또 꼭 들어야만 될 것도 아니기도 하지요, 피끓는 청년에게는.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게 듣기로 합니다.
공산성 해설사분은 이 굵은 느티나무 아래를 설명하는 곳으로 택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오후,
바람에 휘날리며 떨어지는 색 고운 느티나무 잎을 맞으며 듣는 백제 이야기.
그리고 산성 위를 걷는 시간.
이 다리를 일러 '도청과 바꾼 철교'라고 한답니다.
도청을 대전으로 옮기면서 공주시민이 요구한 다리라고.
다리는 1933년에 완공된 것이라 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지금의 철교는 6.25 때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하였다가 다시 만든 것입니다.)
작년 수원 화성에서 배운 것이 나왔다고 학생들이 복습을 했습니다.
방위에 따른 색의 표시입니다.
공산성은 높이가 110m 지만
급경사로 계단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고 언덕도 있고
쉬운 길만은 아닙니다.
3일째 걷고 있으니 다들 다리가 아파 이날은 좀 많이 쉬었습니다.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라고 1915년과 1925년 두번 조선을 방문하여 동영상을 남긴 신부가 있습니다.
이 분이 여기 공산성에 와서 일몰 낙양이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고
자기도 조선에 와서 살고 싶다고 했답니다.
우리도 그 아름답다는 공산성의 해 지는 풍경을 보고싶었지만
서울로 돌아가야 해서 그만....
공산성 안에 약간 너른 땅이 왕궁터 입니다.
'이게 왕궁터라니, 이 좁은 데서 어떻게 60년을 왕궁을 짓고 살았지? '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정말 좁습니다.
사진은 왕궁터 한쪽에 있는 백제 우물터 입니다.
땅의 역사는 백제시대에만 고여있는 것은 아닙니다.
왕구터 옆에 있는 정자, 쌍수정이라고
조선 인조가 벼슬을 내렸다는 나무를 기리는 정자입니다.
2.6Km의 공산성 한바퀴가 다 끝나 갑니다.
저 멀리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드디어 만났습니다.
아예 공산성 밖으로 나가 혼자 앉아 기다리는 학생도 있군요.
공산성에서 일정을 마치고 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이제 3일간의 백제로의 시간 여행을 마칩니다.
화요일 첫날 걸음 수 19494걸음
수요일 둘쨋날 28227걸음
목요일 셋째날 15511걸음 (충경 삼성 갤노트 기록)
답사는 말 그대로 걸으면서 보는 것인데
다들 발이 아팠을 텐데, 잘했습니다.
보고 들은 것들이 마음의 눈 생각의 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들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