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여자 새싹이 우리 학교에 체험학습을 왔다. 2학년인데,, 아직 다 안 자란 머리카락을 여러 갈래로 묶고,
묶은 사이로 삐죽삐죽 비어져 나온 머리카락마저도 귀여운 여자 새싹이다.
다행히 다니던 일반 학교가 방학중이라 우리 학교에서 오랜 시간 체험학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첫날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서 바느질을 권했더니 좋아라 하면서
주머니 만들기를 시도해 본다. 한 개를 만들어 보더니 자신이 생겼는지 한 개를 더 만들어 본다.
그러다가 헝겊인형, 각종 양말 인형에까지 도전을 해본다.
귀엽게 만들어진 인형들의 갯수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바느질 솜씨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본을 떠서 바느질을 하는데, 대단히 꼼꼼하고 질서 있게 잘 한다.
자신이 바느질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며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며 수줍게 웃는다.
이 새싹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이렇게 해도 돼요? 저렇게 해도 돼요? 뭐 가져와도 돼요?
이거 해도 돼요? 저거 해도 돼요? 늘 묻는다. ‘응, 돼.’라고 대답에,
‘근데 이 학교는 뭐든지 돼요? 안되는 거 없어요?’ 한다. ‘우리 학교는 니가 원하는 거 다 돼.’
아이들은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뭐든지 스스로 해보기를 좋아하고, 펼쳐보기 좋아하고, 뒤집어보기도 좋아한다.
스스로 주도적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한다. 뭐든지 경험해보기를 좋아한다.
학교 교육은 당연히 아이들의 이런 특성에 맞춰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단다. 뭐든지 제약하고, 제한하고, 안된다고만 한단다.
별명을 불러서도 안되고, 농담도 하면 안되고, 놀아서도 안되고, 뛰어서도 안되고, 물론 싸워서도 안된단다.
이런 곳이 아직 어리디 어린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일반 학교의 모습이다.
학교는 수업 외에 무엇을 해서도 안되는 곳이라는 인식이다.
한창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놀이터는 학교가 아니라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규격화된 놀이터이다.
이제는 노는 것도 리더하는 지도자에 따라 프로그램으로 제약된 상황 속에서 논다.
몸으로 부대껴가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 가며 노는 것은, 요즘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정말 노는 것도 글이나 책으로 배우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학교란, 아이들에게 열려 있고, 늘 기회를 부여하고, 경험하게 하고, 도전하게 하고, 성취하게 하고,
그것을 밑천삼아 한 발 더 나아가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보호처이자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