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앞에서

 

십여년 전 , 춘천에 있는 학교에 근무할 적에

나는 그런 것이 아쉽고 또 아쉬웠다.

초5에서 중 2까지

한창 감성이 발달하는 시기에

(우리 학교는 새싹, 자람, 리더십과정으로 나누어 과정을 편성하였고

당시 나는 초5~중2까지 자람과정 담임이었다. )

학생들이 울적하거나 슬프거나 그런저런 이유로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무도 나를 찾지않는 곳으로

큰 나무 밑이든 바위 뒤편이든

몸을 숨기고(?) 있을 곳이 필요한데

그런 곳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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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산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논밭이 펼쳐져있고

학교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제법 큰 시내를 만날 수 있는 농촌형 학교였는데도 그런 공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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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서울로, 도시형 학교를 만들고 지낸지 십여년,

아이들은 여전히 감성이 한창 크는 나이인데

우리 학교는 더더욱 숨을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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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방방이 옆, 작은 피크닉 탁자와 의자가 있을 뿐인 아파트 숲이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서만

자신의 혼자 시간을 갖을 수 있기에 그리도 게임에 몰두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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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나가면

아이들과 밤마다 불을 피운다.

첫날, 처음은 마시멜로며 장작이며 왁자하지만

계속 모닥불을 피우면

자연스레 불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을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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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활 타오르는 불은 무섭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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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무슨 생각들을 하여도 상관이 없다.

이렇게 조용히 말없이

불을 보고 앉아있는 시간, 말없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된다.

이 시간이 도시에서는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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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앞이 아니어도 된다.

아침 안개 이는 강가여도 좋고

저녁 별 뜨는 처마밑이어도 좋고

때로는 빗줄기 두껍게 내리는 창가여도 좋은데

아이들이 조용히 즐길 시간만 있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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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밖으로 산으로 숲으로 들로 강으로 자꾸 나가고 싶은데

요즘은 참 어렵다. 정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