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교육 단상
2020.09.11 14:30

우리가 교실에서 연습하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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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실에서 연습하는 것 2

 

정리.jpg

                         ( 자유로운 공간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난 뒤, 다 같이 정리를 하는 모습입니다. )

 

조금 오래된 영화지만, 홍당무라는 제목의

학교가 배경인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주제와 상관없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중학생 딸이 말도 안되는 일을 하는데

그 엄마가 딸을 야단치는 대신에 이렇게 말합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에는 상식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는 거야. 그 이유가 뭐냐?“

 

홍당무라는 이 영화는 공효진, 서우 등

지금은 쟁쟁한 여배우들의 초기 작품이기도 한 영화였는데

수 많은 내용들 중에서 나는 맥락도 잘 생각이 안나면서

이 장면만은 또렷이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물어주는 사람을 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학교 신입생 시절,

점심시간에 강당에서 뛰어놀다가

(내가 나온 중학교는 강당이 아주 크고 좋아서

어린 우리들은 거기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덥거나 비가 오는 운동장을 대신하는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강단 정면, 1미터 높이의 강단을 보니

무대 한쪽에 태극기가 깃대에 꽂힌 채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국기에 대한 예의’를 아주 잘 배운 나는

놀다가 말고 강단 위로 올라가서

태극기를 깃대에서 떼어서 잘 개어놓았습니다.

깃대도 잘 접어 두었고.

그 큰 태극기를 혼자서 접느라고 낑낑 애를 썼습니다.

 

 

점심 시간이 끝나갈 무렵

체육선생님이 강당으로 들어오시더니

“누가 이 태극기 떼었어, 엉?”

소리를 버럭 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놀다가 모두 동작 그만을 할 정도로 .

 

“제가 떼어두었어요”하고 내가 손을 드니까

귀싸대기라고 팰 생각인 듯, 한 손을 치켜드시고

“누가 이걸 떼래?

이제 곧 행사하려고 준비해둔 건데

네가 뭐라고 이걸 건드린 거야?“하고

있는대로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이 된 지금도 그날 일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강당 무대에

먼지 쓰고(?) 서있는 태극기를

배운대로 곱게 접은 내 행동이 졸지에

선생님의 행사준비를 망친 불량학생이 되어버린

그 황당하고 억울했던 마음.

 

그 때 선생님이

“아, 바빠서 죽겠네. 누가 이걸 떼었어?

너냐? 왜그랬어?“ 하고

한 번만 물어주었으면 그 일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을.

 

우리 교실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물어봅니다.

그런 일을 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왜 그랬어요?

 

그걸 아이들과 떼창을 합니다.

내가 먼저 시작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새싹들이 합창을 합니다.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어느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큰 아이가 유치원생인 동생에게

자기가 다니는 새싹학교를 이렇게 설명하더랍니다.

“우리 학교는 어떤 경우에도

왜 그랬니 하고 이유를 물어봐줘.

그냥 야단만 치지는 않아.“

 

아이들도 어른들도 억울한 것이 없어야

가르침이 배움이 살아나는 듯 합니다.

아니, 배우려고 하는 여유가 생기는 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먼저 외칩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실 교실에서 말도 안되게 황당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

맞부딪칠 때 위 ‘구호’를 외치고 나면

교사인 내가 먼저 한숨을 잠깐 쉬는 듯한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위 구호는 교사인 나를 지켜주는 구호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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