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인기 있는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고민 상담실에 올라온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봤습니다.
머리를 감을 것인지 말 것인지, 엄마가 있었으면 결정을 해 줄 것인데
엄마가 미국 여행을 가서 카톡이 안되어 결정을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였습니다.
좀 심한 사례이긴 하지만 몇 년 전 전인고 졸업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싶습니다.
전인고 졸업생들이 모교에 와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일상에서 느낀 것들을 후배들과 나누는 자리였는데 그 때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 얘들이 다 바보 같아요. 점심 시간이 되어 무얼 먹을지 정해야 하는 데 얘들이 다 나만 쳐다보고 있어요.‘
점심에 무얼 먹을지 조차 스스로 결정을 못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 졸업생이 말했습니다. ”애네들은 뭘 결정해본 적이 없는가봐요.“
자신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른 실패와 어려움도 경험을 해봐야
아이들은 커간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 반의 경우 텃밭에 심을 작물도 각자 고르도록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들은 것, 심어본 것을 중심으로 고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고른 것입니다.
견학을 갈 때 교통편을 어떻게 할지도 정해 봅니다.
버스를 타면 앉아서 갈 수는 있지만 오래 가야 하고
지하철을 타면 빨리는 가지만 서서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수 중에서 한 번 골라보는 거지요.
이동 수업을 가면 무얼 먹을지도 선택해야 합니다.
아침은 간단하게 식빵으로 혹은 시리얼로 하고 점심은 일품요리로
저녁은 고기 반찬을 먹어봅니다.
무얼 정하든 새싹들이 요리를 해야하니 그 것도 고려를 해야겠지요.
이동수업이나 견학을 갈 때 3,4학년이 되면 기획서를 써봅니다.
왜 견학을 가려고 하는지, 무얼 배우려고 하는 지
목표가 분명해야 기획서가 작성이 됩니다.
고학년이 되어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면
대체 무엇을 위해 지리산 종주를 하려고 하는지 각자 청원서를 쓰게 합니다.
몇날 며칠을 걸어서 지리산 긴 산등성이를 다 넘어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 고된 일정을 자신의 목표와 의지가 없으면 소화내기란 불가능합니다.
몇 년 전 자람과정으로 진학을 할 때 한 학생이 일반학교를 가고 싶어했습니다.
당시 담임이던 저는 그 결정을 존중해주었습니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면 존중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우리는 항상 최선을 다해 결정을 한다고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결정을 바꿀 수도 있으므로 지금 어떤 근거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러 저러한 곡절 끝에 그 학생이 결정을 바꾸어 자람과정으로 진학을 했습니다만
아이들이 크면서 정말 중요하게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자기 결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자기 생활을 결정해 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때문에, 선생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어’라는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삶이 초라해지겠습니까.
그러니 새싹과정에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혹시 기대와 어긋난 결과를 가져와 실패를 하더라도 기다려 줍시다.
아니 실패를 맛보고 더 야무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줍시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선택을 주저하는 것은
혹시 어른들이 아이들이 크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치마폭에 무릎아래 두고 싶어서
아이들의 결정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아마도 자라면서 스스로 결정하는 경험, 그리고 스스로 책임지는 경험을 많이 쌓아서 그런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