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교육 단상
2016.01.20 22:53

지리산둘레길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준 것들

조회 수 309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5,6학년 담임 그림자 역할 참밝음

 

 

지난 여름, 2주간의 봉화 이동수업을 마치고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들이 집 떠나, 교실 떠나 불편하고 힘겨운 이동수업을 통해 더 힘을 내는 것을 배우게 된다. 또 서로 힘을 합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조금 더 이동수업 기간을 연장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고 지난 이동수업의 성장을 발판으로 한 번 더 힘든 과정에 도전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 어떤 것이 있을까 내내 고민을 했었다. 5학년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며 내년 지리산종주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또 6학년들에게는 작년 지리산 경험을 바탕으로 5학년들을 도우며 팀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도성을 키우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고심 끝에 지리산둘레길로 선택을 했다.

 

준비과정부터 삐그덕 삐그덕. 어느 코스부터 시작해야 할지,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숙소는, 또 중간에 식사는 할 수 있는지, 예상되는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가기 전에 준비하고 훈련해야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인지, 무엇보다도 각자가 지리산둘레길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지를 찾아 청원서를 쓰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담임은 그림자 역할이라고 못 박고 뒤로 한 발 물러선 상태고 6학년과 5학년이 짝을 이루어 협심해 가며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 코스 하나, 숙소 하나 결정하는 대도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다. 5학년들의 체력, 집중도, 건강 상태가 미지수였기 때문에 사전 훈련으로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보며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도 담임 주도가 아니라 새싹들 주도로 진행이 돼야 하므로 고치고 또 고치기를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으며 비로소 4박5일 지리산둘레길 기획서가 완성되었다. 가장 우려되는 건 역시 안전과 더불어 협력이었다.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이 많은 우리 반 특성으로 서로 협력해서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었다.

 

2코스 운봉부터 시작한 첫 날은 예상외로 쉽게 풀린다 했더니 하하하! 민박집 주인 아저씨의 오해로 잘 올라가던 흥부골 휴양림 오르막길을 올랐다 내렸다 다시 올랐다를 반복하며 2시간 가까이 더 걸어가야 했던 일은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둘째 날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수성대 험한 외길을 조심조심 걸어갔던 일, 신발에서 꽥꽥 개구리 우는 소리, 식당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으니 물이 줄줄, 발은 물에 허옇게 불어 튼 상태도 그나마 약과였다. 4박5일 일정에서 가장 지치고 힘든 4일째 되던 날, 힘들어 뒤쳐진 새싹의 배낭을 서로 돌아가면서 메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 앞 팀과 뒤쳐진 팀으로 나눠 걸어갔던 길, 앞 팀이 빨리 가서 점심 식권을 사놓고 뒤 팀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장난치며 걷다가 뒤 팀과 만나서 담임선생님한테 야단맞은 일, 둘레길 안내센터 선생님의 잘못된 안내로 예상보다 두 배나 더 걸려 도착, 직원 식당 문 닫을 시간이 넘었는데도 기다리게 해서 간신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던 일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만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인사 잘 한다고 칭찬은 기본이고 식사비도 적게 받고 무료로 떡갈비도 만들어 주셔서 가는 곳마다 배부르게 잘 먹을 수 있었다. 또 마지막 날 할머니 민박집에서는 제대로 익은 대봉감이랑 금방 삶은 산밤을 호호 불면서 야식을 먹기도 했다. 가을철 둘레길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반갑고 친근했다. 특히 어른들 입장에서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자기 키 만한 배낭을 메고 오리 떼처럼 줄 맞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어찌 대견하고 예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옷을 뚫고 쏟아지던 빗방울이 잦아들고 산 너머 저편에서부터 먹구름이 걷히며 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을 만난 것, 물안개로 온통 산이 뽀얀 옷을 갈아입는 광경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라했다. 비 맞으며 걷는 힘겨움을 겪지 않았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끝까지 나올 것 같지 않은 길고 긴 길도 포기하지 않고 가면 결국 목표한 곳에 도착한다는 것도,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친구들이 서로가 힘이 된다는 것도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들은 또 한 번 아이들을 단단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교실 밖,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그 자체로 자유롭고 생동감 넘친다. 사각 교실에서의 배경은 사각 책상과 의자, 사각칠판, 하얀 벽면...모든 아이들이 똑같다. 하지만 똑 같은 길을 걸어도 각자의 표정이 다르고 그 아이 뒤에 배경이 다르다. 길 가장자리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누구는 푹신해서 좋다고 하고 누구는 밟히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고 누구는 낙엽을 발로 툭툭 차면서 걸으니 지겹지 않아 좋다고 하고.... 각자 다르게 느낀다.

 

평소 같았으면 힘들다 투정도 부리고 못가겠다고 포기도 할 만한데 꿋꿋하게 가야 할 길을 걸어간다. 길잡이는 대열 맨 앞에 서서 나가야 할 방향을 잡고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대열을 살핀다. 힘들어 뒤쳐진 친구는 없는지, 아픈 친구는 없는지, 어디쯤에서 쉬어야 할지 계속 살핀다. 안전도우미는 앞에 서서 “낙엽이 젖었으니 조심하세요. 앞에 나무뿌리가 나와 있어요.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장애물을 확인하고 위험한 것이 있으면 뒤에 오는 친구들에게 소리쳐 알려준다. 또 서로가 서로에게 큰소리로 힘내라고 응원도 해준다. 다른 친구가 늦어지면 팀 전체가 늦어진다. 상황 속에서 배운다.

 

예상보다 일정이 늦어지고 비로 인해 급격하게 추워진 2일차에도 긴급회의를 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내고 중지를 모은다. 결정되면 모두 따른다. 8시간씩 걷고 와서는 하루를 마디맺음하며 늦은 저녁시간에도 모두 모여 한 시간 이상씩 회의를 했다. 오늘 진행에서는 어떤 점들이 힘들었는지, 서로 돌아가면서 칭찬릴레이도 한다. 각자 자신이 오늘 한 역할에 대해서도 성찰하고 실수한 점에 대해서는 사과도 한다. 자신이 너무 뿌듯하다. 애쓴 자신에게 칭찬을 해준다. 또 마치기 전에 내일 일정을 미리 살펴보며 준비해야 할 것을 챙기고 코스를 미리 시물레이션도 해 본다. 난이도는 어떤지, 예상 시간은 얼만지, 식당 예약은 등등. 회의를 다 마치고 나면 벌겋게 달아오른 발바닥이며 뭉친 다리와 아픈 어깨에 맨소레담을 바르며 하루의 힘겨움을 풀어낸다. 이때만큼은 가장 큰 소리로 웃으며 장난치는 시간이다. 약을 바르면서도 좋다고 웃고 떠들고 이불 과 베개를 던지며 장난치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낸다. 역시 애들다운 시간이다.

 

어른들끼리 왔어도 이렇게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4박5일을 진행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지리산둘레길 프로젝트를 통해 새싹들은 돕는다는 것, 힘듦을 서로 나눈다는 것에 대해 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 혼자 걷는 것도 쉽지는 않은 상황에서 자신보다 더 힘들어 하는 친구 배낭을 메고 걷는 6학년들을 본다. 친구의 걸음이 빨라지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도와준 게 참 잘 했구나 생각을 한다.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이 그 새싹에게는 지리산둘레길 목표달성보다도 더 큰 보람으로 다가 왔던 것 같다. 그래서 보고서 책 제목도 나누면 행복하다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번 지리산둘레길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10월 다섯 번째 주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새싹들은 지리산둘레길을 가기 원했고 가기 위해 두 달이라는 시간을 거쳐 기획하고 준비를 했다. 미래는 시간이 가는 대로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꿈꾸고 기획하고 준비하고 노력하면 그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새싹들은 이번 전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맛을 보았다. 이런 경험을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는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삶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열어가는 리더가 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새싹들과 이토록 아름답고 설레이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사실 산행을 많이 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과 함께 매일 8시간 이상, 장거리 산행을 한다는 게 내심 걱정도 되었었다. 그러나 새싹들은 선생님이 행여 힘들어 뒤쳐질까 속도를 맞춰주고 오르막에서는 기다리며 배려를 해주었다. 그 덕분에 지리산의 숭고한 풍광과 걷는 즐거움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가을 깊은 지리산골짜기를 비를 맞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묘미와 찰나에 걷히는 비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투명한 햇살, 사실 그 보다 더 영롱하게 빛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프로젝트 이동수업은 학생들뿐 아니라 자람도우미에게도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된다는 건 확실하다. 이런 기회를 준 새싹학교와 부모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부모님들도 새싹들의 이런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늘 이동수업을 다녀오면 아이들에 대한 이 질감을 조금이나마 부모님들과 함께 공감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곤 했었다. 짜증내고 정리 못하고 장난만 하는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듬직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 배려하며 서로 협력하는 모습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생각으로만 있을 수 있는 꿈을 기획과 준비를 통해 현실이라는 땅으로 내려오게 해서 그 위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우리 새싹들의 내일을 힘찬 격려와 지원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며 지리산둘레길 프로젝트에 함께 했던 소감을 마무리한다.

 

내년에는 지리산 종주도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5학년과 길잡이로서 또 선배로서 솔선수범하며 전체를 안전하게 이끌어온 6학년에게 이 글을 빌어 박수를 보낸다.

 

행복을 함께 나누는 반! 함께 했던 지리산에서의 시간들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프로젝트 이동수업을 통해 더욱 빛나고 자람해 가길 바란다.

 

 지리산둘레길 보고서 책.jpg

 

?
  • ?
    지성심 2016.01.22 16:45
    참밝음선생님, 자세히 정리해주신 글을 보며 선생님의 사랑을 느껴봅니다.
    훌쩍 성장한 우리 5,6학년 새싹들을 잘 지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6 새싹교육 단상 힘이 들고 어려울 때 생각나는 학교 file 충경 2021.05.16 99
135 새싹교육 단상 화의가 안될 때는.... file 충경 2020.10.16 40
134 새싹교육 단상 행복을 찍는 사진사 6 file 지성심 2016.07.08 188
133 새싹교육 단상 함께 걷는 길에서 만나는 등불 2 file 지성심 2015.10.20 216
132 학교현장에서의 '파동'에 대하여 3 file 지성심 2014.12.03 1374
131 새싹교육 단상 텃밭이야기 3 - 풀밭이었다가 희망의 밭으로 file 충경 2023.09.19 20
130 새싹교육 단상 텃밭이야기 1 ...텃밭의 시작 file 충경 2023.09.16 20
129 새싹교육 단상 텃밭 이야기 2 - 풀밭인지 채소밭인지 모를 .... file 충경 2023.09.19 17
128 새싹교육 단상 키 재기 file 충경 2020.07.31 60
127 새싹교육 단상 코딩수업, 무엇을 위한 시간일까? file 산호 2020.05.11 141
126 새싹교육 단상 처음 만난 예자람 -첫 예자람 이동수업에 다녀와서 file 충경 2023.11.03 14
125 새싹교육 단상 참 아름다운 새싹들^^ 3 file 지성심 2015.06.24 236
124 새싹교육 단상 질문학교 file 충경 2022.06.26 89
123 새싹교육 단상 진짜 이겨야 하는 것 file 산호 2023.11.01 4
» 새싹교육 단상 지리산둘레길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준 것들 1 file 참밝음 2016.01.20 309
121 지리산 종주를 하고 나서 5 file 충경 2014.11.14 1077
120 새싹교육 단상 정원 수업 이야기 –주제, 내 일상 이야기로 만들기 file 충경 2023.05.16 55
119 새싹교육 단상 저는 원래 그런데요~ file 충경 2023.06.26 55
118 장보러 가는 아이들 1 file 지성심 2014.10.08 1942
117 새싹교육 단상 작은 생활부터 1 file 충경 2017.04.03 7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 7 Next
/ 7
XE1.8.13 Layout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