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교육 단상
2023.09.20 10:12

빛과 바람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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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단상_산호_베란다텃밭.jpg

@midjourney

 

 얼마 전부터 집 베란다에 상추와 오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식물들이 자꾸 생각이 났다. 요즘엔 식물을 '반려식물' 이라고 부른다더니! 강아지처럼 생각이 나는 것을 몇번 겪다 보니 이 표현이 공감이 되었다. 그렇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키가 더 커져 있기도 하고, 새로운 이파리가 돋아나 있기도 했다. 불과 반나절만에 말이다! 어느 날은 식물들 앞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내가 없는 순간에도 빛과 바람이 식물을 키웠겠구나’ 하는 감동이 올라왔다. 알고있는 사실임에도 그 순간에는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다.

 

 아이들과 지낼 때에도 비슷한 순간을 만난다. 어느 순간 ‘어, 정말 달라졌는데! 많이 컸는데!’ 확 느낄 때가 있다. 혹은 나는 못 느끼는데 주위 선생님들이 말씀해 주실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데 실수해도 부드럽게 대처하는 모습을 본다거나,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의욕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순간들 말이다.

 

 식물을 빛과 바람과 물이 키운다면, 아이들은 도대체 누가 키우는걸까? 내가?? 난 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다만 빛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도우려고 무척 애를 쓰기는 한다. 빛과 바람은 식물이 가지를 어떤 방향으로 뻗든 ‘흥, 넌 왜 그 모양으로 뻗니? 왜 그쪽으로 뻗니?’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도 아이들이 보이는 여러가지 모습들을 우선 수용해주고자 무척 애를 쓴다.

 

 가장 어려울 때는 아이들이 내가 예측하는 행동 범위를 벗어날 때이다. 어느 날은 중요한 발표회 손님들에게 나눠 줄 컵케이크를 만드는데, 공양실에서 두 새싹이 낄낄거리며 컵케이크 틀에 반죽을 담고 있었다. 살펴보니 말간 반죽 위에 빨간 무언가가 올라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핫소스였다. 맙소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 이벤트처럼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벤트와 발표회의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부터 되었다.

 

‘손님들의 반응이 싸하면 어떡하지? 아이가 상처받을 수도 있는데.’

 

‘발표회의 격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담당자인 내가 다른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께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마음부터 천천히 굳어 표정까지 굳어지고, 잔소리가 나오려는 순간 그 핫소스가 뿌려진 컵케이크를 이벤트로 활용할 생각을 하며 너무 즐거워하는 그 아이 얼굴을 보는데…  '그래, 좀 쪽팔리면 어떠하리~~'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굳어진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진 것을 느꼈다. 결국 말의 문제가 아닌 마음과 의식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반전은 아이가 그 이벤트를 하지 않았다는 것! 후일담을 들어보니 ‘나는 재밌지만 다른 사람은 재미없어 하는’ 상황을 아이도 예상했다는 것이다. 휴.. 한 소리 안 하길 정말 잘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빛과 바람은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는 마음 하나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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