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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원했던 꿈

푸른하늘 박연우

 

 아침에 일어났다 일요일인데도 쉴 수 없다는 것은 나에게는 적지 않은 아쉬움도 없잖아 있었다. 나의 금 같은 일요일을 한국사에게 빼았긴 것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 때문인지 나는 일어날 때 안 가고 싶었다. 나는 이런 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일어나 밥을 먹고 가방을 쌌다(크로스 팩을 선택했다. 그냥 가방 꺼내기 귀찮아서)

 엄마가 같이 간다고 했다. 엄마가 자전거를 태워준다고 해서 나는 차갑고도 딱딱한 쇳덩어리에 앉아서 화곡역으로 향했다. 승차감이 썩 좋지는 않았다. 과속방지턱에서는 다리가 그 차갑고도 딱딱한 쇠에 닿았는데 너무나도 아팠다. 그렇지만 걷는 것보다 더 빨라서 더 좋았고 엄마랑 단 둘이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게 어색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산들바람, 초록나무, 멋진지구님이 있었다. 푸른마음님이 안 온 상태였다. 시간은 조금씩 촉박해져 가고 우리마음도 촉박해지고 있었다. 7시 27분? 그쯤에 푸른마음님이 왔다. 그래서 빨리 가면 되겠구나 하고 막 출발하려는데 푸른마음님이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푸른마음님은 늦게 일어나 화장실도 못 간 채 나왔던 것이었다. 우리는 푸른마음님이 빨리 화장실에서 나오길 바라면서 출발준비 상태로 정지해있었다. 푸른마음님이 나오자 마자 나는 전속력으로 뛰었다.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최대한 빨리 환승을 하기 위해 네이버지도에서 나온 2-1번 출구로 가기 시작했다.

 딱 도착하고 타서 룰루랄라 여유 있게 우리는 환승역인 신길에서 내렸다. 우리는 이유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는 행으로 가서 계단을 또 막! 뛰어갔다 제일 앞에서 뛰어가던 초록나무님이 지하철 왔다면서 막 시끄럽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수원까지 가냐고 물었고 초록나무님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안내방송을 보았고 안내판에는 서동탄행 도착이라고 써있었다. 나는 서동탄이 어디로 가는지 바로 옆에 있던 안내지도에서 보고는 “타자 타”라고 또”이거 갈 수 있는데?”하고 일단 타자고 하면서 서둘러서 탔다. 우리는 안절부절 하면서 갖고 있던 지도와 지하철에 있는 지도도 보면서 막 계속 확인을 했다. 특히 그 갈라지는 부분과 처음 탔을 때가 가장 떨렸다. 왜냐면 반대로 갈 수도 있었고 갈라지는 부분에서 우리의 반대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갈라지는 곳에서 가산디지털단지 쪽으로 지하철이 움직이자 나는 맘 편히 앉아서 쉴 수 있었다. 만약 그렇게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면 지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린 수원이 가까워지자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막 밖이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우린 당황한 나머지 옷으로 입을 막았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하늘이었다.

 우린 출구로 나가기 위해 가고 있었는데 그런데 개찰구 밖에서 멋진꿈님과 산들바람님, 우주님과 금빛바다님이 있었다. 얼떨결에 만났다. 뭐 그분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무사히 합류를 했다.

 

 우리는 다같이 4번출구로 향했다. 선생님은 아직 오시지 않은 상태여서 우리는 4번 출구 밖에 앉았다. 분명 그 곳에는 금연!이라고 분명히 써있었건만 사람들은 보이기는 한 것인지 단체로 무시하고 흡연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커피, 담배냄새, 술… 이런 것들이다. 특히 담배 피는 사람도 싫다. 막 밖에서 어린아이들도 있는데 담배피고 무 개념이거나 글씨를 못 알아보는 사람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이제부터는. 선생님들은 안 오시고 우리는 무 개념이거나 글씨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 옆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4번출구 계단에 꼭 붙어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우주님이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하셨다. 그런데 참밝음선생님이 못 오신다는 말인 줄은 알지 못했고 조금 후에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많이 힘들다는 것을 잘 몰랐다.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렸고 선생님이 드디어 왔다. 선생님은 무궁화호를 타셨다는데 그게20분 늦게 출발을 해서 선생님이 지각을 했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선생님이 말하시지 마자 관악산 갈 때 갑자기 지하철이 멈춘 것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결국엔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했다. 맘눈선생님과는 장안문에서 보기로 했다고 해서 그렇구나 하고 충경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녔다. 어떤 옛날사탕을 파시는 분과 지나가시는 분들이 자세히 알려주신 것 같았다. 그것 덕분에 갈 수가 있었다.

 우리는 가다가 어떤 정류소에서 맘눈선생님을 만났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버스를 타고 갈 수가 있었다. 나는 버스를 딱! 찍었는데 환승이라고 말했다. 그 찍는 곳에서 솔직히 버스에서 “환승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에게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집도 가깝고 뭐하나 먼 것 없어서 환승은 겨우 이동수업이외에는 거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좋았다.

 

 우리는 드디어 장안문에 도착을 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이번 답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 하지도 않았다. 조금은 하긴 했다. 맘눈선생님과의 답사가 이제 마지막이라니 되새겨 보니 뭐 좀 챙겨갈 걸 그랬다.

 

 우리가 들어간 장안문의 옆에는 적대라는 것이 있었다. 적대는 원래 문보다 조금 앞에 더 둥글게 나오게 한 것인데 적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적대에는 깃발이 2개씩 정도가 있는데 이 깃발은 동, 서, 남, 북마다 다 색이 다르고 사방신이 있는데 우리가 들어간 장안문은 북쪽에 있다. 그러니 북쪽을 상징하는 사방신은 현무 그러니까 색은 검정색이 있다. 서는 하얀 백호, 동은 파란 또는 초록을 상징하는 청룡, 남은 빨간 주작 정 가운데에는 황색이다. 나는 이번에 사방신을 배우고 찾아보니 가운데는 기린이라고 하는데 가운데 왕을 뜻하는 황색은 기린인 것 같다. 상상 속에 동물을 소재로 한 만화도 있어서 보니까 재미도 있고 더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같은 것을 알게 되더라고 지루하게 남이 알려주는 것 보다 내가 관심 있는 것 찾아보다가 배울 수 있는 것을 즐겁게 보면서 배우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방신이 보다 보니 우리나라 식으로 만든 별자리들의 이름이 있는데 그 별자리를 동, 서, 남, 북으로 나누었는데 아까 나온 것처럼 각각 받은 곳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백호가 좋다.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강력한, 그리고 우리 태권도 이름이니까… 좀 새었다.

 왕은 남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4대 문들 중에서도 남쪽 문이 제일 커야 한다. 그런데 수원은 북쪽 문도 크다. 그 이유가 수원화성을 계획한 정조가 한양에서 오면 북쪽 문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북쪽 문이 크다.

 

 정조가 어머니 생신이실 때 수원에 갔는데 이 때 작성한 의궤가 있다. 이 의궤에는 행차 때 갔던 순서, 어떤 순서로 진행했는데 누가 어디서 잤는지, 어떤 행사를 했고 누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글과 그림으로 다 작성했다 한다. 글로 작성한 것은 몰라도 그림까지 그릴 수 있는지. 그 의궤를 보고 이렇게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것을 보고 와 우리나라 기록의 나라 인정했다. 물론 기록하면 조선왕조실록이지만 아직 본 적이 없으니까…

 

 대부분의 도시는 마을이 발달해서 도시로 변형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정조가 생각한 수원은 보통처럼 마을에서 잘 되어서 도시가 되는 그런 평범한 케이스가 아니다.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계획도시로 만들려고 생각했다. 신세계의 첫 시작을 수원으로 정했다. 정조가 모든 조선 왕들처럼 자기만 잘 먹고 살기를 했다면 수원을 건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기의 꿈에 대한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노력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거의 바닥에서 시작해 꼭대기로 치솟은 경우다.

 정조는 더 나의 꿈에 대한 확실한 나의 생각을 해야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조도 완벽한 성공엔 이르지 못했다. 항상 반대 세력인 노론파가 정조가 하는 것들을 스토커처럼 바라보고, 치려는 생각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그런 스토커의 뜨거운 눈빛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정조는 일부러 매일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들여 나갔다.

 

 정조는 영조의 손자이다. 그러나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 둘 사이의 조선왕은 없다. 그렇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냥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조선 왕들 통틀어서도 없었던 일을 영조가 만들어 냈다.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있었다. 영조는 노론파 덕분에 왕이 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영조는 노론파에게 끌려 다녔다. 그 것을 본 사도세자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영조가 주었던 세력들로 노론파를 약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 것을 영조는 사도세자를 혼내면서 왜 세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냐고 말을 했다. 사도세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식을 하고 그 다음 번에는 영조에게 그 것을 써서 올렸는데 또 화를 내면서 그 세력을 나누어준 때가 언제인데 그것을 혼자 해야지 나에게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반대로 화를 내었다. 그 이유는 노론파였다. 노론파가 영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계속해서 노론파를 없에려고 하고 영조는 막고 결국에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행한 것은 뒤주에 넣어서 굶게 만들어 죽인 것이었다. 6~7일 만에 28살인 사도세자는 무예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몸집이 컸다. 그렇게 큰 사람을 내가 들어가도 머리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작은 뒤주에 넣어서 죽인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없길 바래야겠지만…

 그래서 영조와 정조 사이에 아무 왕도 없었던 것이다. 영조는 죽인 것도 모자라 묻어준 무덤도 배봉산이라는 곳에 묻었는데 토지가 나쁜 땅이었다. 그래서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한 말중에 하나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말한 것이었다. 정조는 아버지가 죽은 것도 안타까운데 묘도 좋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 슬펐다. 결국 묘를 옮기고 말았는데 옮긴 곳이 화산이라는 산이다. 절대 그 활화산 같은 것이 아니라 꽃 화여서 화산이다. 화산에는 그 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정조는 차마 내쫓지 못하고 이사할 돈 이상을 주어서 다른 곳에서 살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해서 화산에서 사도세자가 편안히 주무실수 있게 했다.

 

 수원은 큰 문인 사대문, 작은 문인 사소문이 있는데 사소문은 아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간다. 신기한 것은 성곽 안에서도 일반 평민들이 살았다. 물론 조금 돈이 있는 평민들이 살았을 것 같지만 암튼 성곽 안에서도, 밖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안과 밖을 잘 구별하는 것이 안 된다고 한다. 이 성곽 안에서 사는 평민들도 은근히 그게 자랑일 것 같다. 어쨌거나 성 안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양반처럼 느꼈을 수도 있고 왕이나 신하인 것을 상상을 했을 것 같다. 좋은 상상이지만 깨어보면 쨍그랑~! 다 깨져있다.

 

정조는 당시 규장각에서 활약을 했었던 정약용을 붙잡고 계속 이 수원의 설계도를 그려달라 얘기를 하였다. 그렇게 결국 성공을 거두어 정약용과 수원을 신세계로 만들었다. 정약용은 거의 완벽한 설계도를 만들었다. 오차는 겨우 돌 1개뿐. 이 설계도가 얼마나 정확했다면 오차가 단 1개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지 난 이 설계도를 꼭 실물로 보고는 싶다. 본다면 나의 기록에서 더 해야겠다는 것이 있을 것 같다. 정약용은 독창적인 것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특히 방화수류정은 독창성과 건축의 미를 자랑했다. 정말 한옥으로도 그런 건축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 건물이다.

 정약용은 수원 성을 만들 때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기도 했다. 사람이 많다고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도구를 써서 더 빠르고 신속하게 화성을 만들 수 있었다. 이 화성을 만들 때 왔던 사람들에 대한 정조의 태도 또한 달랐다. 예전에는 돈 주지 않고 했다면 정조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써서 자신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다. 더 많이 일을 하면 보너스 연금이 나오는 것이고, 또한 무지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은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했다. 추울 때는 평민들은 하기 힘들다는 털모자를 선물하는 등 정조가 백성들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가 있다. 사실 조금 일한 사람은 적게 많이 일한 사람은 많게 요즘 시대에선 가능 한 일인지 몰라도 그 시대에는 왠지 불가능 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시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가능 할지도 모른다. 그 글쓰는 사람이 한 명씩 맡으면서 몇 발짝 걸었는지도 세었을 것 같은 신뢰감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그런 것이 발달하고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성벽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게 총을 쏠 수 있게 한 것이다.  총 구멍이 3개를 1타라고 하는데 타와 타 사이에는 활을 쏠 수 있는 긴 대각선으로 파인 곳이 있다.

 

 엄격했던 영조, 이런 영조도 왕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영조는 천민이었고 영조의 바로 전인 경종을 영조가 죽였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론파가 영조를 왕이 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서 노론파의 의견을 많이 반영시키고 나쁜 마음을 갖고 있는 노론파에게도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녔다. 이렇게만 보면 매우 순진하고 착해 보인다.  이 영조는 무려 83세라는 나이에 돌아갔다. 굉장히 오랫동안 사셔서 사도세자가 살았더라도 왕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 산 할아버지 덕분에 25살에 왕위에 올랐다. 이정도도 늦게 왕이 된 것이다.

 

 정조는 66번 정도 밖에 나갔다고 한다. 그 중에 13번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보러 갔다고 한다. 정조는 그 어느 조선 왕보다 외출을 자주한 왕인데 신하들은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또 왕이 밖에 승차하시면 준비도 해야 하니까 어떻게 밖에 66번 밖에 안 나가다니 난 지금까지 밖에 나간 것이 적어도 1000번은 될 것이다. 그런 왕도 불쌍한 것 같다. 66번 밖에 못나가니 행사다 풍습도 궁궐 안에서만 즐길 수 있었으니

 

 수원에서는 과거시험을 보았다. 굳이 수원에서 한 이유는 통과를 하면 그 근처에서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게 되니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또 외국에서 수입을 하며 유통하는 상인들에게 성 안에 있는 자리를 싸게 내주어 큰 장터도 만들었다. 정조는 수원을 신세계 신도시를 만들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했다.

 

 정조는 수원에다가 노래당이라는 곳을 나중에 정조가 살 것이라고 만들었다. 결국 이 곳에서 살지는 못했다. 정조는 피부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한다. 정조는 왕이어서 함부로 살을 피를 떼어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번 답사에는 저번 보다는 집중이 더 잘 된 것 같다. 저번에는 너무 잘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했갈렸고 정리도 잘 안 돼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아빠-아들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더 집중도 잘 되고 질문도 더 한 것 같다. 영조는 좀 어쩔 수 없었지만 단호하고 아들까지 죽인 왕, 사도세자는 아들을 사랑하고 자기의 의견 같은 것을 제대로 밝혔던 세자, 정조는 인심이 좋고 자기 위한다고 남을 막 대하지 않는 왕.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맘눈선생님과 같이 수업하면서 힘들어서 좀 집중을 못 한 것 같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나중에도 같이 수업을 하고 싶다.

 

 또 이번에 답사에 갔다 오고 나니까 사도세자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역사란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직접 가보거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나 또는 영화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나는 엄청 집중 잘 한 것 같다. 첫 날보다, 그리고 이번에 에세이 쓴 것 중에 제일 내가 만족하는 점수가 높은 것이 이번 ‘정조가 원했던 꿈’인 것 같다.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갔다 오니까 정말 좋고 운동도 되고,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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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밝음 2015.10.25 13:49

    아....사조세자에 대해 푸른하님이 느꼈을 애달픈 마음과 정조에 대한 신뢰,
    영조 할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원망들이 느껴집니다.
    함께 답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출발부터 마칠 때가지 보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푸른하늘님이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글쓰는 재능이 뛰어난 푸른하늘님의 에세이를 자주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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