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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답사 보고서

2015년10월14일수요일

5학년 푸른마음 최찬호

고인돌

지석묘라고도 부른다.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구석기시대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

구석기시대 동안 고인류들은 채집과 사냥을 하고 살았으며 이동성생활을 하였던 시기이다. 인류사의 거의 99.8%가 구석기시대이다. 그런데, 인류는 약 7백만 년 전에 나타났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기는 약 250만년 전의 것이다. 인류의 발생 직후에도 자연석이나 나무 등을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석기를 제작한 흔적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대의 침팬지들도 도구의 사용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결국 석기시대라고 하는 시기는 250만년 전에서 홍적세에 정착생활이 시작되는 1만 2천년 전의 시기까지를 포함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도 적어도 150만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하였으며 중국의 전 지역에서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른 시기의 고인류의 화석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석기유적들이 한반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어서 홍적세 이른 시기에 고인류가 유입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구석기 ·중석기 시대에 이어지며 금속기시대에 선행한다. 약 1만 년 전, 즉 지질학상 홀로세인 제4빙기가 끝난 후빙기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생산경제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 등 2가지를 들 수 있으며, 그래서 이 시기를 ‘인류의 위대한 생산혁명’이라고도 한다.

이 시대에는, 식량을 채집하고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 단계에서 벗어나 인류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의 의존에서 벗어나 자연을 이용 개발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였다. 동시에 인류는 정착 ·촌락 생활이 가능해져, 결과적으로 문명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기술이 진보하여 식량을 저장하거나 익혀 먹기 위한 용기로서 토기가 발명되었고, 농경·수렵·벌채용의 도구로 간석기가 사용되었다.바구니 제작, 방직기술이 나타났고, 생산력 증가와 인구 증가에 따라 촌락을 만들게 되어 원시적 건축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농경의 발달로 풍요를 비는 지모신(地母神) 신앙, 사체 매장을 위한 장례방식 등, 정신면의 발달도 있었다.

또한 이 시기의 말기에는 지역에 따라 자연동을 사용, 도구를 만들게 되어 금석병용(시기로 접어든 곳도 있었는데, 이러한 신석기시대의 생산경제는 이후 고대 도시문명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

 

청동기시대

청동의 야금술이 알려지고, 그에 따라 이기 등의 기구가 제작·사용되면서도 아직 철의 야금술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시대를 말한다. 구대륙의 선진문화권에서는 동기시대에 뒤따르고 철기시대에 선행한다.

C.J.톰센이 1836년에 제창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동기시대의 설정에 반대하는 학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주된 반대 이유는, ① 문화의 정도가 높으면서도 원료, 특히 주석이 없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에는 들지 못했던 사회가 있었던 점, ② 원료인 동이나 주석 산지와 그 산출량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청동기 제품은 상층계급의 무기와 장신구를 볼 수 있을 뿐, 사회 전반에 보급되지 않았고, 생산용구로도 채용되지 않았으므로 청동이 가지는 사회경제사적 의의가 그다지 높이 평가되지 않는 점, ③ 원광석에 포함되어 있던 주석이 제련법의 미숙으로 그대로 남아 있어 의도와는 다른 청동기가 만들어져, 그것과 합금술로써 제작된 참된 청동기와의 구별이 곤란한 점 등에서 찾을수 있다.

 

조선시대

1392년 즉위한 태조이성계에서 1910년 마지막 임금인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8년간 지속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고려왕조는 권문세족이 발호하는 가운데, 정치체제가 약화되고 왕권이 쇠퇴하였으며, 밖으로는 이민족의 침입이 계속되는 등, 혼란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때에 이성계는 여진족·홍건적 ·왜구 등을 물리쳐 명성을 높이며 중앙정계에 진출, 조준·정도전 등의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여 구세력인 최영일파를 숙청하고, 또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마침내 1392년 7월 16일 개성의 수창궁에서 선양의 형식으로 왕위에 올라 나라를 개창하니, 이를 역성혁명이라고도 한다.

이 글은 한국시대사의 한 부분으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1392년부터 개항한 1876년까지를 서술하고자 한다. 서양사의 시대구분과 달리 고려 말 신흥 사대부의 주도로 성립된 조선을 중세와 근대 사이에 존재하는 과도기적인 사회로 인식하여 ‘근세’라는 독립적인 시기로 볼 수 있다.

조선을 근세사회로 분류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이 고려와의 차이점을 꼽을 수 있다.

원래 조선은 우리나라의 넓은 의미의 명칭으로 고조선에서부터 유래되었고, 중국에서도 널리 불려왔다. 조선은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로 알려졌고, 조선왕조가 멸망한 뒤에도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를 통치하여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지속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처음에는 민심의 동요를 생각하여 국호를 계속 고려라 하고 서울을 개경에 정하였으나, 곧 민심의 혁신을 위하여 국호의 개정과 천도를 단행하였다. 먼저 고조선의 계승자임을 밝히고자 하는 자부심과 사명감에서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이를 1393년(태조 2) 2월 15일부터 사용하였다.

조선왕조는 고려왕조와는 달리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 커다란 변화와 영향을 주었으며, 500여 년 동안 지속되는 강건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조선왕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고려왕조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근대사회에 한층 가까워졌으며, 수많은 문화 유적을 남겨놓아 한국 민족문화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대한제국

1897년 2월 고종이 환궁한 후 독립협회와 일부 수구파가 연합하여 칭제건원을 추진, 8월에 연호를 광무로 고쳤으며, 9월에는 원구단을 세웠고, 드디어 1897년 10월 12일 황제즉위식을 올림으로써 대한제국이 성립되었다.

제국을 성립하기까지 서로 연합하였던 독립협회와 수구파는 정체 문제로 대립하였다. 독립협회가 입헌군주제로 개혁하여야 한다고 한 반면, 수구파는 전제군주제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대립은 1898년 절영도(절영도:부산 영도)를 러시아에 조차하는 문제로 격돌하였다. 독립협회는 조차를 외국이 침략하는 첫 단계라고 판단하고 1898년 3월 10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1만여 명이 참가한 만민공동회를 서울 종로에서 열어 절영도 조차 요구 반대, 일본의 국내 석탄고 기지 철수, 한로은행 철거 등을 요구하고 제국의 자주독립 강화를 결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가 철회되고 일본도 국내의 석탄고 기지를 되돌려주었으며, 러시아와 일본은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니시-로젠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세력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실천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이에 고종은 경무청과 친위대를 동원하여 독립협회 간부를 체포하고 개혁파 정부를 붕괴시킨 다음 조병식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 정부를 수립하였다. 여기에 자주 독립세력을 꺾어버리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한 일본이 수구파에 가담, 독립협회의 운동을 탄압하도록 권고하고 이를 고종이 받아들여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강제해산함으로써 독립협회와 수구파의 싸움은 수구파의 승리로 끝났다.

수구파 내각은 1899년 8월 17일 대한국국제를 제정·공포하였다. 이에 따르면 국호는 대한제국이고 정체는 전제군주제이다. 수구파 정부는 국제열강의 세력균형을 이용하여 실력을 기르는 데 힘쓰기보다는 친러적인 경향이 강하였다.

이를 지켜본 일본은 러시아와의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러일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안 정부도 1904년 1월 국외중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서울을 점령하고 2월 23일 대한제국을 위협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은 침해되기 시작, 일본은 1904년 7월 20일에는 군사경찰훈령을 만들어 치안권을 빼앗은 데 이어 8월 22일에는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로 재정권을 빼앗아갔고, 1905년 11월 17일에는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강탈하였다.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같은 해 8월 29일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숙제

1.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

사고는 조선전기 사고와 조선후기 사고가 각기 다르다

조선전기의 사고는 도심에 있다.

그래서 경복궁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에 사고가 있었다.

사고들이 임진왜란에 의해 불이타고 약탈당하면서 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내사고인 춘추관과 외사고인 묘향산, 오대산, 태백산, 마니산 이렇게 사고가 생겼다.

그래서 경복궁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에 사고가 있었다.

사고들이 임진왜란에 의해 불이타고 약탈당하면서 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정족산은 전등사, 오대산은 월정사, 태백산은 각화사, 적상산은 안국사.

 

2. 금속활자가 우리나라가 먼저 만들었는데 왜 구텐베르크가 먼저 만들었다고 할까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이다. 이 말은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고어가 1997년 베를린에서 열린 G7 회담서 말한 내용이다. 구텐베르크는 초판부터 180부의 기독교 성서를 찍었지만, 우리는 10부 정도밖에 못 찍었다고 했다. 세계 인쇄 역사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55년에 간행한 "42행성서" 를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이렇게 된 배경에는 우리 선조들이 위대한 발명품을 적극적으로 대중화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생활화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써 열심히 만들기만 했을뿐 생활속에서 쉽게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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