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문화의 날에 형과 누나를 보기 위해 부모님을 따라온 7살인 ‘동희’라는 아이가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의 아빠는 누구야? 너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빠는 누구야? 나의 할아버지
그러면 그 할아버지의 아빠는?
그 아빠의 아빠는?
그 아빠의 아빠는? ---
아빠는 좀 이야기를 하다가 나머지는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말은 마칩니다.
이 장면을 보면 7살(만 나이로는 5살이 될까?) 나이의 어린이도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많은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질문들을 더 풍부하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이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그 질문의 결과들인 지식을 외우고 시험을 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나이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모여 ‘존중’ 대해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학교의 수업장면입니다.
살인을 일삼았던 사람들, 매일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자신의 존재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각종 중독자들 등등의 사람들도 존중해야 하나요?
나무나 바람이나 물도 존중해야 하나요?
그들도 모두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생물도 생명인가요? 생명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생명은 모두 존중되어야 하나요?
왜 존중되어야 하나요?
밤이 깊었는데도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낮에 공사운력을 해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눈망울을 크게 뜨게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듣고 질문을 합니다.
학생들 중에 다음과 같이 기발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나의 몸은 간, 위장, 눈, 코 등 다양한 생명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존중한다는 것은 이들도 존중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큰 생명체라고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지구에 다양한 생물이나 물질들은 지구의 구성물입니다. 그렇다면 지구가 지구를 존중한다는 것은 이 구성물 모두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 논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참 기발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우주로까지 확장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일학교의 정체성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누구나 가지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같이 추구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다양한 수업내용속에도 그 질문들은 계속해서 던지고 답해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 곳, 때에 스승을 보라'
내일학교의 모토 중의 하나입니다.
스승은 자신의 성장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자의 내면에 있으며, 그 성장의 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