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태양, 그리고 물
바깥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작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큰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무가 떨어뜨리는 씨앗, 그리고 낙엽들. 나무가 살아가면서 남기는 수 많은 흔적들. 우리들도 언젠가는 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
나무가 잘 살기 위해서는 각각 나무의 종류마다 필요한 것들이 다르다. 어떤 나무는 습한 곳에서 자라고, 어떤 나무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만 잘 자란다. 그러한 나무들 사이에서도 또 새롭게 나뉘게 된다. 불리한 위치에서 태어나 그냥 죽어가는 나무들이 있는 한편, 어려운 상황에서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특별하게 자라나는 나무들도 있다. 돌을 갈라서 나온 기적의 나무, 지금은 하나의 종류지만, 땅에 물이 없어서 가지에서 물을 얻는 Red wood. 평범한 나무지만 샐 수 없을 만큼의 경쟁 끝에 살아남은 나무들. 각각 나무마다 사실 커다란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각자 위치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지만 말이다. 어떤 나무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 저 나무는 나보다 시작이 빠르지?" "애초에 저 나무를 이길 수 없었던 장소였어" "햇빛이 필요해, 잎만 키웠더니 냇물이 역류해 휩쓸렸다" "지나가던 파리가 쉬어가더니 병에 걸렸네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데" 수도 없이 많은 불만들이다. 그래도 나무들은 그 불만을 가지고서, 그 자리에 서서 성장을 해 나간다. 불만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버리는 나무는 없다. 마지막까지 꽃 하나 더 피우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그러한 나무들이다. 앞에 나무가 점점 커져, 햇빛을 가려버리기 전까지, 가리고 나서도 햇빛을 향해 잎 하나 더 뻗어보려는 그런 에너지 말이다. 그렇게 나무들에게는 따스하고, 적당한 햇빛이 필요하다. 이곳 미국에서, 나와 내일학생들은 다 함께 정원작업을 하였다. 만들어 놓고 보니 참 예쁘고, 정원을 더 키워보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다. 우리는 배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꽃도 심고, 허브도 심고 등등등 많은 식물들을 심었다. 땅도 좁지만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 식물들이 그냥 다 쑥쑥 자라지는 않았다. 꽃들은 심은 지 1주일도 채 안돼 서서히 죽어갔고, 배추들도 많은 양 줄었다. 로즈마리는 심은 지 정말 얼마 안되어서 죽어버렸다. 대부분 죽는 이유들은 간단했다. 로즈마리는 우리의 판단 착오로 너무 더운 날에 물을 엄청나게 많이 줘서 죽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꽃과, 배추들이 죽은 이유는 다름 아닌 '햇빛'이였다. 그렇게 많은 식물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다해 찾아가는 햇빛으로 인해 잎이 말랐고, 결국 잎들은 그 용도로 사용되지 못하고 죽었다. 어떤 식물들은 그렇게 원해도 얻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이곳은 건조하고, 햇빛이 너무 강해서 물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말라 죽게 된다. 식물들은 위로는, 햇빛을 향해 간다. 하지만 아래로는 물을 향해 자라난다. 어떻게든 자신의 삶의 양분이 되는 것들을 향해 자라간다. 아까 예를 들어본 한 식물을 생각해보자. 자신의 위치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다 다르다. 너무 그늘져, 햇빛이 드는 곳까지 잎을 펼쳐야 살 수 있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땅이 너무 건조해, 물이 있는 곳으로 뿌리를 더 뻗어야 하는 식물도 있다. 햇빛만 쫓아가던 식물들은 언젠가 바람이 세게 불면 휙 하고 넘어져 죽게 되고, 물만 쫓아가다 보면 성장 하고자 하는 힘을 많이 얻지 못한다. (광합성) 자신의 위치에 따라서 먼저 필요한 것만 달라지게 된다. 그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뿌리만 있거나, 잎만 있으면 큰 나무가 되기 전, 죽거나, 다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무가 바라보아야 하는 햇빛과, 물에 대한 인식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나는 언젠가 나무와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작년에 ‘나 나무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었다. 다들 다 다른 나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자신의 나무들을 발표했다. 나무 안에 있는 것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가, 햇빛과, 물, 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등 수많은 추구들을 가지고 이 수업에 파고 들었었다. 내가 그리는 내일학생들의 나무는 다 함께 내일학교라는 곳에 씨앗으로서 심겨져 있다가 각자의 잎을 하나씩 내밀어 갔고, 다들 어떤 방식으로든 자라고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노력해나가면서 뿌리를 내려가며 물을 찾아 마셨고, 우리들의 뿌리는 그렇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가끔씩 그 과정이 힘든 나무들도 있었고, 아직 씨앗에서 시작을 못 하는 학생까지 학생들 각각마다 그 모습들은 다 달랐다.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햇빛들을 받아가면서 그들은 내일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향해 더 깊은 뿌리를 뻗어나가는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그 햇빛은 바로 그들의 부모님들이다. 그들을 낳아주었고, 오랜 기간 키워주었으며, 그들과는 끊을 수 없는 정들과,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 그러한 모습에 비춰 부모님들을 햇빛에 비유할 수 있다. 그들이 새로운 에너지 원을 찾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쏟아주는 그러한 햇빛에 모습에 비추어 말하는 것이다. 적어도 내일학교에 있는 학부모님들을 예를 들어서 말이다. 우리는 햇빛에게서 에너지를 받고, 그 에너지를 사용해 또 다른 새로운 양분들을 찾아 나가는, 더욱 큰 나무가 되는 과정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무는 그렇게 점점 커져가고, 커질 수록 땅 속 깊은 양분들을 더욱 많이, 더욱 빠르게 가져가는. 그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힘들고, 가끔씩은 운도 따라야 하며, 나무가 그 의지를 가지지 못한다면 금새 병들이 찾아와 나무를 죽이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난관들이 나무 앞에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것들을 이겨나가야만 치열한 생존 속에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게 된다. 지구에 필요한 산소들을 만들고, 그늘아래 수많은 생명들이 쉬어가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그런 나무가 되기까지 말이다.
현재 우리들은 많은 난관들을 거쳐왔지만 아직 큰 나무가 되지는 못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성장의 난관이 수도 없이 남아있고, 아직 어리기에 그러한 더 많은 난관들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우리가 내일학교에 심겨진 이유는 각자가 원해왔고, 내일학교에 들어오면서 햇빛들은 나무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쏟아주는 관계가 되었다. 나무와 태양, 물의 관계는 그렇게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햇빛이 쨍쨍 쏟아지는 곳에 물을 놓으면 점점 말라 없어지게 된다. 그러한 모습은 바로 사회와, 사회 속에 있는 일반학교의 모습이다. 많은 가치를 돈에 놓고 있는 사회 속의 학교는 돈에 맞춰진 진로, 인재를 만들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맑고, 깨끗한 물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들을 뿌리를 내려 땅속에 돈을 따라 가게 되었고, 우리 사회는 그러한 것들이 당연시 되듯 우리 모두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다. 진정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기회를 받고 있는 우리는 그 감사함과, 감사 함들 통해 나오는 의지, 성장 욕구들을 더 키워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 깨끗한 물은 이곳 내일학교에서만 얻을 수 있고, 그 물은 자신이 큰 나무가 되는 중요 에너지가 되기에 더욱 더 그 물을 찾아 떠나는 성장을 진행해야 한다. 우리는 강요 받지 않았고, 우리가 원해 이곳에 심겨졌기 때문에 더욱 감사함을 느끼고, 성장해야 한다. 아직 큰 나무가 되지 못했기에, 큰 나무가 되어 우리가 이 지구에 끼칠 좋은 영향을 위해.
최근 우리학교에 일어난 일들을 전해 들었다. 햇빛이 너무 강해, 땅에 있던 물들이 마르기 시작했고, 나무들은 그 깨끗한 물을 찾기 더욱 어려워졌다. 나무의 성장을 바라는 태양이라면, 나무가 클 수 있는 최대한 성장해서 지구에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태양이라면 깨끗한 물에게도, 그 물이 있는 땅에게도 감사해야 하며, 사막에 있는 태양의 모습도 접어야 하며, 나무와 물에게 사랑을 쏟아주어야 한다. 햇빛만으로는 나무가 성장할 수 없다. 물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땅에 고여있기만 하면 언젠가 썩기 마련이다. 물과 햇살, 그리고 나무가 더 깨끗한 산소를 만들어내고, 지구에 더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