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독서 대련
별구름
2019-04-17
사회는 저울 같아서 한쪽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다른 한쪽에서도 반응을 보인다.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행동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재앙이 될 수도 있고 행복이 될 수도 있기에 함부로 결정하지 못하고 항상 대립되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저울이 아닌 어떤 방향이 단점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은 공익과 사익이 충돌했다. 극단적으로 나눈다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될 수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더욱 다양하다. 시민회관에서 사용하는 공공 시설물들, 무료 자전거 대여 등 각종 공공의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의 삶의 질은 어떠할까? 사회적 문제는 이를 조금 더 확대하여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과연 기본적인 의, 식, 주를 해결해 준다면 사람들이 나태해지지 않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기에 더욱 복잡하고 꼬이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서 이는 더욱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은 기술적 발달과 환경의 변화가 있더라도 그를 더 잘 이용하고 그를 이용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그 사회에 맞는 정책과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한 사회에서 우리들은 그러한 변화의 파장에 휩쓸리지 않고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또 더 먼 미래를 관측할 수 있도록 그것이 우리들이 미래를 배우고 공부하며 토론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면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고 그 방향속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떠한 움직임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은 혼자 할 수 있을까? 혼자 할 수 있다면 왜 불필요한 토론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익혀가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바로 ‘팀수업의 필요성’이라고 생각한다. 토론은 분명 논쟁을 하기는 하지만 더 좋은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논쟁하고 질문해서 더 나은 방향을 추구하고, 그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팀단위로 활동한다면 그 파급력은 얼마나 될까? 개인의 노력보다는 팀으로 기여하는 삶. 그래서 궁극적으로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삶. 그것이 진정으로 이상사회를 탐구하고 과거의 ‘자본론’, ‘국가’, ‘유토피아’ 등을 읽으며 토론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