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개] 나의 문어 선생님
풀꽃
나태주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요사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고 있는데요. 개중에는 영화인지 애니매이션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흥미도나 긴장도 구성면에서 탁월한 작품들이지요. 오늘은, 특히 감동적인 작품 <나의 문어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1인칭 시점의 영상입니다. 주인공 크래그 포스터는 '번 아웃' 상태의 영화 제작자입니다. 힘겨운 제작환경으로 지쳐있는데다가 인간관계, 특히 가족관계 마저도 힘겨워진 포스터. 어떻게 하면 심신을 충전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데요. 그는 남아프리카 바다를 선택합니다. 어릴 적에 그렇게 했던 것 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8도의 수온.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추위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기다리면
몸은 어느새 바다와 하나가 되고
대서양의 다시마 나무 숲을 날아 다니고 있습니다.
바다속의 세계는 그야말로 신비롭고 이국적이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요. 며칠간 맨몸 잠수를 통해 활력을 얻은 포스터는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되는데요. 거기서 그는 우연히 암컷 문어를 만나게 됩니다.
첫만남에서 그녀는 조개껍질을 빨판에 다닥다닥 붙여서 마치 갑옷을 입은 것 같은 모양새로 방어했습니다. 문어를 만난 것도 신기한데 갑옷을 입은 문어라니! 포스터는 이 기묘한 생물체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게 될 것이란 것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문어가 사는 굴로 찾아가서 관찰하기로 합니다.
첫 30일간은 그냥 관찰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단순 탐구생활이었죠. 신기한 생물체를 쳐다보는 느낌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조금씩 더 알게 되면서 문어와 포스터 사이에 두려움과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어느날, 굴 속에 단단히 몸을 붙인 문어는 포스터를 향해 다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뻗어봅니다. '대체 이 존재는 무엇이냐? 나를 먹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뭘까? 궁금하다.'
문어는 다리에 달린 빨판을 통해 포스터를 확인합니다. 문어는 빨판에 신경세포의 60% 이상이 모여있습니다. 빨판 하나 하나 가 작은 두뇌인 셈이죠. 강아지가 냄새로 상대를 인증하듯, 문어도 빨판으로 상대를 인증한것입니다.
이후부터 문어는 포스터를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합니다. 덕분에 포스터는 이 진기한 생물체의 모습을 더 생동감있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피부색과 질감과 모양을 변화시켜서 기막히게 변신하는 모습, 주위 환경으로 부터 배우고 터득하며 생존해가는 모습,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 그걸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문어의 수명은 3년에서 5년. 누구에게서도 생존법을 배울 수 없으므로 스스로 배우고 학습하고 터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알을 낳아 부화시킨후 죽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알뜰하게 써야만 하지요.
52일째. 드디어 포스터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문어. 문어가 자신을 믿고 있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온다는것에, 포스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막 접촉을 시도하려는 찰나! 렌즈를 떨어트리는 바람에 산통이 깨져버리죠. 문어는 기겁해서 자신의 굴을 두고 떠나버렸습니다.
낙망한 포스터는 관계를 다시 연결하려는 결심을 합니다. 그녀를 찾기 위해서 문어생태를 공부하고 대서양 앞바다를 매일 같이 뒤집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때 문어의 반응은? "어? 왔네요? 반가워요." 였습니다.
문어는 천천히 다가와서 포스터의 손을 감쌌습니다. 포스터는 숨이 차서 천천히 수면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문어는 그에게 몸을 맡기고 수면위까지 따라올라갔지요. 그 짧은 순간 포스터는 문어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습니다. 문어와 포스터의 우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지요.
포스터에게 그녀는그냥 문어가 아닙니다. 자신과 똑같이 두려움과 통증을 느끼고, 때로 바닷속을 산책하듯 거닐며 놀고 춤추고, 호기심을 가지고 살피고,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교감하는 것에 기뻐하는 벗이 된 것이지요. 이제 포스터는 문어의 세계, 문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알고 싶어합니다. 자료를 찾고 공부하고, 문어가 활동하는 밤에도 잠수를 하기 시작합니다. 연대감은 점점더 깊어지는데......
125일차, 포스터는, 파자마 상어가 문어 다리를 물어 뜯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처음에 포스터는 상어 때를 몰아내려고까지 하는 정신없는 생각까지 하죠. 그러다가 개입불가의 원칙, 생태계 존중의 원칙을 지키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보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포스터는, "저는 동물과 특별히 교감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때, 제 팔이 뜯겨나가는 것만 같은 그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팔이 뜯겨나간 문어가 걱정이 되어 매일 매일 찾아가보 지만 그외에 별로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사실 이런 심정을 이해가 되기도 하지요. 만일 수수나 비살이가 누군가에게 팔이 뜯겼다면... 그걸 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울까. 생각도 하고 싶지 않죠.
포스터와 문어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나의 문어 선생님>은 1년간 문어의 친구로 생활한 포스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포스터가 만난 문어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포스터가 느낀 생태지능의 이야기도 알려줍니다. 그러다보니 일반 자연다큐 보다 훨씬 온기가 있는 명작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어와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을 볼 때는
누군가가 마치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왔지요?
오직 인간만이 지구에서 살권리가 있는 것 처럼,
무지막지한 힘을 휘둘렀지요?
지구에는 정말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고 살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느끼고 표현하고 연대하고 공감합니다.
고등지능이라고요?
무엇이 고등한 걸까요?
우리는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고 그 역할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라고 말이지요.
120분의 러닝타임이 30분처럼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은 다큐를 소개하게 되어 기쁘고요.
다음에좋은 작품이 있으면 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영화 소개를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