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오늘 올라온 굿모닝 타임의 명언명구로 선정되어서 놀라웠다.
"오늘도 변화하지 않으면 내일도 다음주도 다음달도 내년도 오늘처럼 살아야 한다." - 베르지트
우리는 늘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지길 바라고 꿈꾼다.
내가 힘들 때마다 중얼거리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거야." 라는 표현도
가만 보면 시간만 지나면 뭐든 해결된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 새로운 태양이 뜰 수 있도록 오늘 뭔가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발전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질 때마다
혹은 잘못한 것을 지적 받을 때마다
큰 성공을 한 사람의 자기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새 해 새 아침을 맞을 때마다
아니면, "이건 아니야. 난 더 잘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새로운 다짐에 다짐을 하며 앞으로 내가 해나가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든다.
공간을 정리하고 방청소를 한다.
운동을 시작한다.
독서를 하고, 인터넷에서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말로 알 수 있듯이 이런 엄청나고도 단호한 결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결심을 계속 지켜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넘어야 한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할 일을 내일로 미뤄두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선생님께서 저희를 좋아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아니 당신은 누구신데요?"
"내 이름은 “하려고 했었는데”입니다."
"거참 희한한 이름도 다 있군요. 그렇다면 같이 온 동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 이 동자는 저와 쌍둥이입니다. 이름은 “하지 않았음”이구요."
나는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이루지 못하다 라는 마을에 살고 있지요."
그러자 “하지 않았음”이 독촉했다.
"어서 떠나자. 그 귀찮은 녀석이 쫓아올 거 아니야."
"그 귀찮은 녀석이란 누구입니까?"
"할 수 있었는데"이지요. 꼭 유령처럼 우리 뒤만 밟는다니까요.
이 글은 정채봉이라는 분이 쓴 [이순간] 이라는 동화에 있는 "할 수 있었는데" 라는 글이다.
두 명의 방문객과 유령처럼 따라다닌다는 "할 수 있었는데"를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면, 자기 삶에 어떤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시간은 우리가 철들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이며, 누구나에게 상대적이다.
이 시간 동안 어떤 방문자들을 맞을 것인지는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ㅎㅎ
다른 방문객도 떠오르네요.
"할거에요" 이 분도 좀 불안불안하지요.
저는 앞으로
"했습니다"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