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15.07.27 12:01

첫번째 출사모임 - 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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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김녕지질트레일을 잘라서 출사코스를 만들었다.

참가자는 나와 멜빈. 예상대로 단 둘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6시가 아니라 5시로 공지할 것을. 사실 해가 중천으로 가면 빛은 끝난다. 빛이 세어지면 사진도 아름답게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실 정말 아름다운 사진을 건지고 싶다면 새벽4시부터는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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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코스 자체는 매우 아름다웠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환해장성부터 시작한 코스는 마치 당을 향한 여정처럼 느껴졌다. 옛 성터가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해변으로부터 코스가 시작됐다. 새로 산 카메라를 설레는 마음으로 꺼내들었는데, 처음부터 내마음에 들어온 것은 지질코스트레일의 안내 리본이었다. 바람에 쉼없이 날리는 무언의 이정 표시. 

 

우리는 이정표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해변이 아름다워서인지 카페가 즐비했다. 즐비한 카페거리를 지나면 다시 캠프장이 나왔다. 어디나 사람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빤스만 입고 뛰어다니고, 코펠이며 버너며 마련해온 음식거리들. 김녕의 바람에 날리는 빨래들. 나무그늘에 앉은 남녀들. 그길을 지나면서 희고 순결한 백사장이 펼쳐졌다. 백사장의 흰빛은 에머랄드빛 바다와 대조를 이루면서 눈이 부셨다. 멀리 필리핀을 갈 필요가 뭐 있으리오. 멀리 등대가 보였다. 등대가 마음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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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이번 출사는, 결국 이정표, 등대, 삶의 방향이 되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등대를 멀리서 찍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고만 있어도,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아무리 멀어도 보이기만 한다면 그 삶은 잘 펼쳐질 수 있다.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어디까지 가야하는 모를 때, 그때 배는 표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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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등대도 만나게 되었다. 멀리 떠난 뱃사람들을 이 등대는 매일 같이 기다렸을텐데. 그런데 재건하기는 했어도 멋스러운 이 등대에 이건 무슨 이기심이란 말인가. 천막에 고기굽는 불판에. 그리고 저 정자는 대체 멋없이 왜 저기다가 박아놓았을까. 아무리 봐도 등대의 옛스러운 자태가 무색한 판이다. 젠장.

 

우리는 곧장 마을길로 들어섰다. 개가 살고, 보습학원이 있고, 마당에 앉아 나물을 다듬는 삼춘들. 그들은 이 마을 복판에 있는 개웃샘굴 개웃샘터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샘굴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잠겨져 있지 않았다. 불을 잘 비쳐보면 장어가 산다던데 볼 수는 없었다. 자연 에어콘 바람이 한줄기씩 등을 훑고 지나갔는데 어찌나 시원하고 청량하게 느껴지던지. 샘굴 저 안쪽으로는 밖에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보였다. 옳지. 이물이 저 구멍을 통해 나가는구나. 그래서 다시 아까 봤던 용천수 자연목욕탕으로 솟아 오르는 구나. 이 동네 사람들은 물 하나는 걱정없이 살았겠네.

멜빈은 제주는 물이 귀하다 보니 물길러 멀리 다니는 동네로 시집가라는 말이 가장 큰 욕이었다고 했다. 제주 여성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온가족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물허벅을 수십범 나르고, 열길 저승물속을 수십번 오가고, 그리고 죽을동 살동 밭일을 하던 그 여인들. 내가, 또는 제주학 학자가 그 삶을 어떻게 공감해봤자 얼마나 공감하겠는가. 그들의 열길물속 삶중 한길이나 들어가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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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샘터의 달콤한 쉼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당으로 향했다. 본향당은 여전히 들어줄 준비를 하고 우리를 맞았다. 예전부터 이곳에서 흘렀던 이야기의 끝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마음에 바라는 바, 마음에 품은 꿈이 없다면 희망없는 삶이고 무의미한 시간의 나열일 것이다.

내 삶은 어떤 소망을 품고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그것이 내 삶을 의미있게 해줄 수 있을까.

당을 당답게 만들어주는 팽나무 아래에서 나는 잠시 상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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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사건, 전시건, 음악이건 예술이건 그 행위로 행위자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행위에는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의미가 깊으면 깊을 수록 사진도 예술도 생산물도 깊어진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의미있는 사진 출사 모임을 만들어가기를 기원하면서 첫번째 모임을 마쳤다.

 

마음빛그리미의 좋은 벗 멜빈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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