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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 민경희님 / 고려닭 사진입니다 :D)




닭을 키우는 것, 농장을 운영하는 것은 "농사"와는 많이 다르다.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오나, 한파 또는 무더위가 닥칠 때에도 농장에서는 매일 닭들을 돌봐야 한다. 오히려 태풍 또는 장마시기에는 폭우 속으로 삽을 들고 걸어 들어가서 계사 주변에 고인 물을 빼기 위해 물길을 내야 하고, 대설주위보가 내렸을 때는 농장의 주요 길목과 계사주변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하고, 한 여름 땡볕에 뜨거운 무더위가 닥칠 때에는 계사에 통풍이 잘 되게 창문을 올리거나 방목을 하고, 때때로 계사 지붕에 물을 뿌리기도 한다. (물론 요즘 TV에 나오는 것처럼 극한직업들이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농장일 힘들다고 불평하려는 것은 아니다.ㅎㅎ)

2013년, 겨울을 맞이하면서 참 많이 두려웠었다. "겨울"이라고 하면 모두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나에게는 나뭇잎들이 다 떨어진 횡량한 산과 꽁꽁 얼은 계곡, 털갈이를 시작하는 닭들, 만약 계사의 급수파이프가 얼었을 때 닭들이 물을 못 먹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AI로 인한 걱정, 칼바람과 추위 속에서도 야외에서 일은 해야하는 서러운 이미지가 있다. 그게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어떨 때는 농장에서 일을 하다 눈물이 뚝뚝 흐르기도 하고... 겨울은 아무튼 나에게 외롭고 무거운 계절이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꽃 피는 봄"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그러나 정작 작년 겨울은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지나갔다. 그냥 하루 하루 견디다보니 어느 새 따뜻한 봄이 쑥~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이번 겨울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훨씬 덤덤했다. "이제 겨울이 왔구나. 얼른 준비해야지. 늦더라도 계속 움직이자."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물론 올해도 10월부터 진행해 온 월동준비가 늦어졌고, 12월 한파가 몰아닥칠 때가 돼서야 급수시설의 동파방지 작업을 마쳤다. 2개월 동안 질질 끌던 작업이 겨우 "급하다"는 이유로 이틀 만에 마무리 될 때의 허무함이란... 물론 아직까지도 월동작업을 다 마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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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기쁜빛 / 자연포란으로 탄생한 고려닭 병아리와 함께)




올 해로 벌써 내가 스물 중반이 되었다. 페이스북에는 내 또래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한다는 소식이 종종 올라온다. 나는 지금 <내일칼리지>에 재학 중이고, 2년 전 미국 유학을 중단하고 한국에 귀국한 이후 <내일교육커뮤니티>와 그 속의 <내일학교농장>에서 일해왔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왜 쟤는 일반 대학도 안 가고 시골에서 닭을 키우고 있지? 공부는 안 하나?" 사실 나도 진로와 미래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이다. 이 시대의 청년들처럼 돈과 금전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도 많다. . 
그래도 내가 정말 확신하는 것은 "지금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 내가 성장해온 곳이자 사랑하는 가족들-이곳의 선생님들, 내일학생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내일교육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더 나은 세상과 사회, 인류의 대안을 찾고 그것을 변화시켜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나는 "일반적인 길"을 걷고 있지는 않다. 남들처럼 스펙을 쌓거나 사회 경험을 많이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게 부끄럽기보다는 나름 자부심을 느낀다. 나처럼 20대에 농장을 운영해보고, 몇 천 마리의 닭을 키워보고, 농사도 해보고, 커뮤니티라는 특별한 문화-구조 속에서 생활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하는 경험을 몇 명이나 해보겠는가. 난 나만의 특별한, 고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내일교육커뮤니티에서, 내일학교 농장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워왔다. (물론 앞으로 공부하고 배우고 경험할 것들이 더 많다.)
 
내일학교 농장에서의 나의 역할을 <생산-사육파트 담당>이다. 일일 달걀수거 및 계사관리, 사료급이와 닭들의 영양공급관리, 계사시설관리, 농장환경미화, 달걀판매를 위한 선별 및 포장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내가 농장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노동" - 내일학교에서 울력이라고 부르는 일이라 단순히 몸으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배우고 해보면서 나는 얻은 것이 참 많았다. 닭들에 대한 이해(닭을 해부하는 법이나 닭의 생리학), 달걀에 대한 이해, 가축사양관리 지식, 자연양계 및 농업에 대한 지식, 농사관련 지식, 실제로 농장을 관리하면서 얻게 되는 많은 경험들, 전기시설을 수리하는 방법, 파이프와 배관자재를 연결하는 방법, 굴삭기 사용법, 농장에 있는 작은 차량을 운전하는 법(운전면허는 아직 없지만 ^^), 전기드라이버, 타카, 망치질, 전기톱 등을 사용하는 목공작업, 모터수리, 생명과 삶에 대한 다양한 추구 등등...
물론 나도... 내가 이런 것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분야를 접하게 됐고, 아직 모든 것을 다 능숙하게 하진 못한다. 때때로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지 못할 때는 만능해결사이신 보리선생님과 한별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농장을 운영해가는데 꼭 필요한 경험과 기술, 지식을 얻었다.  그냥 현실에 부딪히면서 배우고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들, 그 과정 속에서의 나만의 스토리가 지금 돌아보면 나에게 정말 큰 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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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입추 준비 중인 계사정비를 하고, 내일교육커뮤니티 회원분들과 함께)




"Do It Yourself!" 도시에는 뭐가 고장하면 A/S센터에 찾아가거나 직원이 집으로 방문한다. 그러나 농촌에는 무언가 고장이 나면 일단 자체적으로 수리를 해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계사의 계곡물을 끌어올리는 모터가 고장났었는데, 얼른 수리를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시내에 있는 모터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모터집 아저씨께 오늘 당장 모터수리가 가능한지 여줘보자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기 모터를 잘 아시는 남자분 없니껴? 좀 체크해보면 알텐데~"
"아... 그게 계시기는 한데 지금 바쁘셔서요...ㅠㅠ (지금 다들 농장에 없으셔서 어쩔 수 없이 아저씨께 전화드린 거예요ㅠㅠ) 그래서 한 번 모터를 수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오늘 수리를 맡기면 바로 고쳐질까요?" 
"아 그러면은... 좀 있다 잘 아시는 '남자분'이 오면, 일단 물 끌어올리는데 가서 손가락을 호스 끝에 대보면서 물이 빨라올려지는지 느낌이 드는지 확인해봐요. 빨아올려지면 모터가 고장난 게 아이고... 거기 파이프나 연결배관들을 체크해보면 되고... 만약 빨라 올리는 느낌이 없으면 모터가 고장난 거이... 그건 여기 와서 해결해야 하고요. 일단 확인해보이소~"
"아........ 그렇군요..... 네...ㅠㅠ 그러면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ㅠㅠ"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나는 모터와 치수선을 확인하러 계곡에 내려갔다. 아저씨 말씀대로 하나씩 체크해보니 갑자기 모터가 잘 작동되었다. 이건 단편적인 예이지만, 도시에서는 기계가 망가지면 A/S를 부르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대부분의 물건들을 자체적으로 수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농장에서는 많은 것들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농장에서 일하던 초기에는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한별선생님~ 보리선생님~ 도와주세요~" 하면서 시설에 대해 잘 아시는 남자선생님분들을 찾았다. 

농장에서는 언제든지 시설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한 번 셋팅해놓는다고 그것이 완벽하게 유지되는 경우는 없다. "계사" - 내일학교에서 <닭살이장> 이라고 부르는 곳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자연환경 속에 노출되어있어서 늘상 똑같이 유지될 수 있다. 수리하고 고치는 게 일상이다.
그렇다 보니 매번 농장의 시설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남자선생님들을 부를 수도 없고... 다들 바쁘시기 때문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래서 남자 선생님분들이 도와주실 때면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방법을 배우려고 했고, 무언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발생해도 일단 내가 먼저 해결해보려고 했다. 물론 어리숙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듯 덤벼봤다. 모터 나사를 하나하나 풀어서 모터를 분해해보기도 하고, 해빙기를 사용하다가 뜨거운 물에 손을 데기도 하고, 차가운 겨울 계곡물에 손을 담그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내가 여자지만... (심지어 모터집 아저씨도 '남자분"을 찾으셨지만) 여자라서 못할 것도 없으니까! 물론 40kg 싸래기를 들고, 달걀을 300알씩 나르고(30구 난좌를 10판 쌓으면 300알이 된다), 내 몸과 비슷한 크기의 200L짜리 물통을 옮기는 일이 쉽진 않다. 팔도 아프고, 관절도 쑤시고, 정말 고.단.하.다.

그래도 그 속에 "보람"이 있다. 농장의 시설들이 하나씩 개선되고, 매 회 들여오는 닭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건강하게 사육되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보다 편하게 닭을 키울 수 있고, 문제가 발생했던 부분을 해결했을 때의 안도감과 기쁨, 뿌듯함이 있다.
"이야~ 진짜 해놓고 나니 좋네? 진짜 이번에는 전기선 깔끔하게 연결했다! 쟤네들(닭들) 좋아하는 것 봐~ 
얘들아~~ 언니가 했어! 좋지? 언니 짱이지?!ㅎㅎ" 이렇게 닭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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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충녕님 / 2013년 여름, <내일학교 농장 오피스> 개원식... 아 벌써 아득하다~)




지난 2년간 농장에서 일하면서 무엇이던지 간에 적당히, 수동적으로 임하면 거기에서 더 발전하긴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사실 내가 모르는 것이라도 일단 뛰어들어서 해보려고 하면 안 되는 게 없더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내일학교 농장>은 지난 3년간 투자해 온 비용보다 많은 수익을 내진 못하고 있다. 농장의 정기회원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많은 고객분들께서 신뢰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꾸준히 운영되어왔지만, 아직도 많이 버겁고 어렵다.
그래도 올해로 벌써 3년 차가 되었다. 2015년에는 <내일학교 농장>을 더 잘 운영해서 흑자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이다. 아직도 우린 많이 어렵지만, 그래도 이미 내 안에서 답을 절반 정도는 찾은 것 같다.

"꽃피는 봄"은 기다린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한 발 내딛고, 뛰어 들고, 뭐라도 만들어보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를 찾으며 "어서오세요~!" 하고 반갑게 맞이 할 때 비로소 "꽃 피는, 생명이 살아나는 따뜻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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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내일학교농장을 지원해주시고 믿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2015년에는 더 발전하는 <내일학교 농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앞으로 내일학교 농장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기쁜빛의 다양한 농장운영 경험담을 꾸준히 올려보려고 합니다! 
<기쁜빛 농장일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
    내일학교농장 2015.01.04 22:41
    기쁜빛님! 농장일기 잘 읽었어요. 그때 그시절...처럼 몇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서 생각해보았어요. 농장에서의 그 고단함을 많이 나눠갖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힘을 내서 올해는 "내일학교 농장 짱!!"을 함께 만들어보아요. "내일학교 농장"과 계란을 사랑해주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
    기쁜빛 2015.01.10 23:42
    내일학교 농장 짱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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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애 2015.01.22 23:09
    농장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기쁜빛님~ 새해에는 좀더 여유롭게 농장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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