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소식
2013.02.01 14:40

내일학교 농장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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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이 오고 싹이 트자 내일학생들은 매년 하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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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년 같은 이야기가 나오다가 그냥 지나가곤 했습니다. 왜냐고요? 저희는 병아리를 어디서 사는지, 뭘 먹이는지, 어떻게 키우는지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쩌다보니 누군가가 구글에 '토종닭 병아리'라고 입력을 해 봤고, 검색결과에 뜬 농장 몇 군데에 전화를 걸어봤고, 마침 태어난 지 4주가 된 따끈따끈한 병아리 300마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 것입니다.


갓 태어난 병아리도 아니고 4주차면 잘못해서 떼죽음시킬 일도 없을 것 같고, '그럼 시험 삼아 한 삼십 마리만 사 볼까요'라고 이야기가 오고가던 찰나... 내일학교에는 통 큰 선생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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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에 대해서도, 닭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던 학생들과 '통 작은' 교사들은 '닭은 풀어놓으면 알아서 잘 자란다더라'라는 말을 믿고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삼일 뒤에 병아리 삼백마리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내일학교에 날아든 것입니다. 준비? 저희에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삼 년 전에 '농사라도 지어볼까'하고 뼈대만 세워두고 비닐은 씌우지도 못한 채 방치되었던 하우스 '뼈대' 뿐이었습니다. 


비상, 비상! 수업하던 학생, 교사, 마침 와 있던 졸업생까지 총동원되어 뚝딱뚝딱 비닐하우스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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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생 동원노동의 현장


제대로 쳤냐고요? 그럴리가요... 치수를 잘못 재어 비닐이 모자라 옆면이 휑하니 뚫린 움막이 하나 나왔을 뿐이지요. 때는 4월 말, 전국 최강의 혹한 지역 봉화인지라 우리는 아직도 두꺼운 내복을 벗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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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들이치는데 병아리들이 춥지 않을까요?"

"닭은 더위에 약하고 추위에 강하대요.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눈 오는데 바깥에서 자더라는걸."


맞는 말이었습니다. 병아리들은 솜털이 빼곡하게 자라 웬만한 바람에는 얼어죽지 않을만큼 튼튼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몰랐습니다. 추우면 얼어죽진 않아도 서로 몰려들어 '압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병아리를 배달하러 온 농원 사장님은 오자마자 기가 막히다는 듯 한숨부터 쉬시더군요. 그러더니 발길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아마도 두려우셨던 것 같습니다. '다 죽었어요 엉엉' 이런 전화를 받을까봐요. 그분도 집에서 병아리들이 기다리는데 가지도 못하고 저희 비닐하우스를 보강해주고 가셨습니다. 모이통도 물통도 없는 이 한심한 사람들에게 칼과 페트병으로 모이통 물통도 만들어 주시고요.



그리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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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아리와 닭 모두 합해 삼천마리가 계곡에 드글드글합니다.


내일학교의 일상은 더이상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일단 아침에 일어나 닭부터 돌보고, 선생님들은 병아리 돌보느라 불침번 서느라 바빠서 닭장에서 업무를 보기도 합니다. 어두워지면 학생 교사 모두 헤드랜턴을 켜고 닭살이장 순찰을 나섭니다. 일요일이면 항상 달콤하던 늦잠도 옛 이야기, 그야말로 모두가 농부에 병아리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비오면 비가 와서, 가물면 가물어서 병아리 걱정에 학생들은 어리광도 잊고 이리뛰고 저리뛰기 바쁩니다.




내일학교 농장은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일러스트 / 내일학생 민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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