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804 추천 수 0 댓글 0

 

달걀 속의 生 2

 

 

냉장고 문을 열면 달걀 한 줄이

온순히 꽃혀 있지,

차고 희고 순결한 것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난 그것들을 쉽게 먹을 순 없을 것 같애

 

 

교외선을 타고 갈곳없이 방황하던 무렵,

어느 시골 국민학교 앞에서

초라한 행상아줌마가 팔고 있던

수십 마리의 그 노란 병아리들,

마분지곽 속에서 바글바글 끓다가

마분지곽 위로 보글보글 기어 오르던

그런 노란 것들이

(생명의 중심은 그렇게 따스한 것)

살아서 즐겁다고 꼬물거리던 모습이

살아서 불행하다고 늘상 암송하고 있던

나의 눈에 문득 눈물처럼 다가와 고이고

 

 

그렇다면 나는 여태 부화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을까,

 

 

아아, 얼마나 슬픈가,

차가운 냉장칸 맨 윗줄에서

달걀껍질 속의 흰자위와 노른자위는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실에서

입원비 걱정을 하고 있는 우리 가난한 형제들처럼

흰자위와 노른자위도

무슨 그런 절망의 의논들을 하고 있을 것인가

 

 

사계절 전천후 냉장고

하얀 문을 조용히 열면

추운 달걀들의 속삭임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 엄마 안아줘요 따스한 품속에

어미닭에 안기지 못하고 만 달걀들처럼

희망소비자 가격보다 더 싸게 팔려온

너희들처럼

나도 역시 여권이 분실된 사람

희망의 온도가 차츰 내려갈 때

오히려 절망은 조용하고 초연해지는 것 같지

 

 

 

- 김승희 달걀속의 생 95. 96쪽-   

 

 

 

 

가을이 되어...

시집을 읽다가 .. 

오랜만에 올려 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내일학교달걀 구매는 이렇게 하세요!] file 내일학교 2022.05.26 279
공지 내일학교 농장은 AI 안전지대입니다! file 내일학교농장 2017.06.13 293
26 계란 주문 1 secret earbit88@gmail.com 2013.09.16 3
25 계란 주문 1 secret 신애 2013.09.27 4
24 계란 정기 배송 관련 내용입니다. secret 영꾸리 2020.06.18 1
23 계란 배달되지 않아 문의드립니다. secret 노찬옥 2018.08.23 5
22 계란 문의 1 윤지운 2021.04.18 135
21 계란 문의 이현수 2022.10.14 82
20 결제금액이 달라요 1 secret 파랑이 2015.11.19 2
19 거위털 볼펜과 황금알 file 한결 2013.07.23 4878
18 가입문의 1 secret 러제인 2019.01.25 6
17 가격이 올랐나요? 1 secret 지민맘 2017.06.09 1
16 가격문의 1 secret 재로로 2017.09.11 3
15 가격 1 홍정구 2013.06.07 2071
14 [주문수정] 달걀이 화요일 제외한 날에 도착하도록 해주세요 1 secret 신애 2013.11.07 5
13 [이벤트 안내] 2월에 내일학교 농장에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file 예진 2019.02.12 198
12 [보내는 사람을 표시해주세요] 계란주문했는데요.. 1 secret 혜원 2013.10.01 1
11 [가을, 시집을 읽다가] 하나를 위하여 1 한결 2013.10.12 2581
10 [가을, 시집을 읽다가] 아프락사스 6 한결 2013.10.12 2611
9 [가을, 시집을 읽다가] 문(門)을 위한 애사 한결 2013.10.12 2548
» [가을, 시집을 읽다가] 달걀 속의 生 2 한결 2013.10.12 2804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Next
/ 10
XE1.8.13 Layout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