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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속의 生 2

 

 

냉장고 문을 열면 달걀 한 줄이

온순히 꽃혀 있지,

차고 희고 순결한 것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난 그것들을 쉽게 먹을 순 없을 것 같애

 

 

교외선을 타고 갈곳없이 방황하던 무렵,

어느 시골 국민학교 앞에서

초라한 행상아줌마가 팔고 있던

수십 마리의 그 노란 병아리들,

마분지곽 속에서 바글바글 끓다가

마분지곽 위로 보글보글 기어 오르던

그런 노란 것들이

(생명의 중심은 그렇게 따스한 것)

살아서 즐겁다고 꼬물거리던 모습이

살아서 불행하다고 늘상 암송하고 있던

나의 눈에 문득 눈물처럼 다가와 고이고

 

 

그렇다면 나는 여태 부화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을까,

 

 

아아, 얼마나 슬픈가,

차가운 냉장칸 맨 윗줄에서

달걀껍질 속의 흰자위와 노른자위는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실에서

입원비 걱정을 하고 있는 우리 가난한 형제들처럼

흰자위와 노른자위도

무슨 그런 절망의 의논들을 하고 있을 것인가

 

 

사계절 전천후 냉장고

하얀 문을 조용히 열면

추운 달걀들의 속삭임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 엄마 안아줘요 따스한 품속에

어미닭에 안기지 못하고 만 달걀들처럼

희망소비자 가격보다 더 싸게 팔려온

너희들처럼

나도 역시 여권이 분실된 사람

희망의 온도가 차츰 내려갈 때

오히려 절망은 조용하고 초연해지는 것 같지

 

 

 

- 김승희 달걀속의 생 95. 96쪽-   

 

 

 

 

가을이 되어...

시집을 읽다가 .. 

오랜만에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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