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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린 비로 땅이 무너졌다.

 

흙으로 이루어진 땅은 비에 약하다. 물길이 한번 지나기 시작하면 큰물이 질 때마다 사정없이 흙은 하류로 하류로, 속절없이 달아난다. 버려진 땅이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면 땅의 거진 반쪽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내일학교 키친 가든(텃밭 정원) 부지인 '309번지'는 그렇게 자연의 섭리로 인해 개울 쪽으로 비뚜름하게 기울어진 땅이었다.

 

그래서 석축을 쌓았다. 처음에 굴삭기 기사를 불러서 쌓았다가 하루에 수십만원이 우습게 날아가는 것을 보고 고민끝에 굴삭기를 샀다. 선생님들이 굴삭기 면허를 땄다.

 

석축 쌓는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개울 쪽에 돌을 부려놓고 벽을 쌓는다. 벽이 만들어낸 공간에 흙을 붓는다. 굴삭기로 이리저리 다진다. 다시 벽을 쌓는다... 그렇게 5년을 쌓았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에 시멘트를 다져넣은 멋없는 석벽이 아니라 이리저리 궁리하고 고민해 쌓은 돌벽이라 제법 예뻤다. 

 

예쁜 게 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올해 여름 축제 전에 키친 가든을 완공하고자 조금 서둘렀을 수도 있다. 아직 부어넣은 흙이 고르게 다져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너무 심한 비가 와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아침에 일어나자 땅이 무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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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축이 무너지면서 땅이 허물어졌다.


석축만 무너진 게 아니었다. 지난 한 달간 그 석축 위에 예쁘게 흙부대로 벽을 쌓았다. 몰탈로 미장을 하고 하얗게 칠을 해서 동화같은 키친가든을 만들려고 했다. 감자와 토마토가 정원식물처럼 보이길 기대했다. 석축이 무너지면서 땅이 무너졌고, 그 위에 쌓았던 하얀 흙부대도 허물어졌다. 우리가 그곳에 들인 시간과 삶이 함께 흩어졌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원래는 위토피아 페스티벌이 시작되기 전 키친 가든을 마저 완성해서 그곳에서 나온 야채로 맛있는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이제는 위험하기에 들어갈 수도 없다. 돌을 모두 꺼내고 새로 쌓아야 한다. 

 

정원 마당 부지는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이곳을 속히 마무리하고 산 위로 올라가 '별보기 마당'을 만들려던 포크레인은 발이 묶였다. 올해 안에는 다 복구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앞으로 계획된 모든 것들이 2년은 미루어지게 됐다. 비용으로 따진다면 억대의 손실이다. 미뤄지는 시간, 상처입은 마음, 연쇄적으로 나타날 파급효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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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로 틀을 짜서 예쁘게 키친 가든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이런 비용을 따지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사람이 안 다쳤기 때문이다. 그 땅 위에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들이 올라가고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아직 아무 것도 없고 고작 토마토와 오이, 흙부대벽 약간만 있는 땅만 무너졌기 때문이다.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꽤 위험한 곳들을 여럿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모두 다 빼내고 처음부터 다시 쌓기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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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새로 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 상황 자체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매우 장엄하고 냉혹한 비유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토대가 부실하다면, 어디에선가 돌 하나가 빠져나온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위험은 더더욱 커진다. 그러니 기초부터 탄탄하게 잘 쌓아야 한다. 학교도 그렇고, 축제도 그렇다.

 

올해 위토피아 페스티벌은 3회차다. 1회와 2회가 망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게 아무 소식도 없이 지나갔다. 그래도 여기에 계속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시 3회를 준비해야 한다. 원래 하기로 했던 것을 다시 하는 것에 집중하고, 처음에 꿨던 꿈을 다시 불러와 펼쳐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7월 말에 시작하는 축제를 6월부터 준비하는 모습도 여전하고, 공사를 하면서 내일학교 수업을 하면서 홍보를 하고 모집을 해야 하는 삼중고도 그대로다. 어찌됐든 시작은, 첫 돌을 단단히 올리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땅이 무너졌으면 다시 쌓아서, 밟고 다지면 된다. 오늘만큼은 스칼렛 오하라의 마음이 절실하게 이해가 된다. 그래,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여기서 그만둬 버리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겠지. 그러니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는 수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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