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교육 단상

묵은 마당을 정리하며

by 충경 posted Sep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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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화단 (3).jpg

 

부산화단 4-1.jpg

 

 

집 마당이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2년 동안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방치가 되었다.

이번 주말에는 다잡고 화단정리를 시작하였다.

큰 나뭇짐들은 남편이 틈틈이 갖다 버려서 그나마 정리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호미 하나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모과나무 밑부터 정리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아이고~.

나무 밑 흙에 자잘한 쓰레기가 잔뜩이다.

직장을 다닌다고 마당 관리야 아버님이 다 하시겠지 하고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막상 호미를 들고 앉아보니 유리 조각에 사기 조각, 자잘한 비닐에 플라스틱 조각까지

한참을 나오는 쓰레기들이었다.

 

유리병이나 그릇이 못쓰게 되면 아버님은 그걸 잘게 부수어서 마당 한 켠에 버려오셨나 보다. 작은 유리, 사기 조각은 내 눈에 익숙한 색들이었다. 이건 작은 아이가 도예 체험으로 만들었던 컵 조각이네, 이건 아버님 재떨이였군만 하고.

 

몇 시간에 걸쳐 쓰레기를 다 주워내고

그걸 쓰레기 봉투에 담으니 30리터 봉지로 2덩어리가 나온다.

뼈 조각이나 전복 껍질은 흙에 도움이 되거니 그냥 두고

잡초까지 다 뽑고 나니 마당이 훤해졌다.

 

농사 짓던 시절에는 쓰레기가 나오면

집 뒤 어딘가 마당에 쌓아두거나 묻어두었을 것이다.

사기 그릇 깨진 것도 마당 한 귀퉁이에 묻어두면 세월가면 흙으로 변해가겠거니 하고.

음식 찌꺼기들이야 두엄더미에 던져두면 다 같이 거름이 되었겠지.

 

도시 생활에서는 쓰레기는 쌓아둘 수가 없는 폐기물이다.

그릇 조작들은 그릇 조각대로, 음식물 쓰레기는 음식물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앞으로 우리집 마당에도 쓰레기가 버려지는 일은 아주 없어질 것이다.

 

분해되지 않은 비닐들은 땅과 섞이지 않고 자리를 잡고 앉아

풀과 나무가 마음껏 자라지 못하게 한다.

자잘한 유리 조각들은 땅 전체를 각박하게 날카롭게 보이게 한다.

 

그런데 쓰레기 뿐이랴,

감정들도 제때 제때 처리가 되지 못하고 묻어두면 그렇지 않던가.

기억도 안 나는 자잘한 상처들을 품고 있는 가슴은

별거 아닌 일에도 사람에 대해 모진 말을 하게 하고

평소에도 너그럽지 못한 언행을 하게 하지 않던가.

그 상처들을 찾아 뽑아내느라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힘이 드는지.

쓰고 남은 물건들을 제때제때 내놓아

다른 사람이 쓰게 재활용을 하던지 쓰레기로 버리던 지 정리하듯

감정들도 풍성하게 사용하고 나서는 갈무리를 제때제때 해두어야겠다.

 

마당의 묵은 쓰레기들을 걷어내며 여러 생각이 드는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