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교육 단상

생각을 연습하다

by 충경 posted May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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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jpg

 

 

(이미지는 얀 반 에이크의 '롤랭수상과 성모자 '그림을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지난 주 글쓰기 과제가 위 그림을 해석하고 있는 '윤운중의 <명화의 비밀>' 을 동영상으로 보고 에세이를 써내는 것이였습니다. )

 

 

 

내가 물었다.

 

 

 

글을 잘쓰고 싶어요?

 

잘 쓰면 좋겠죠.

 

음, 교실에서는 그런 말투로 이야기하면 안되는데...

 

왜요?

 

남 이야기하듯이 하잖아, 그러면 좋겠죠 하고.

 

아, 네.

 

그게 왜 안되는 줄 알겠어요?

 

왜...죠?

 

배운다는 건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어떤 것이 장점이고 어떤 것을 보완해야 하는지 점검을 해간다는 건데, 자기를 남처럼 이야기하면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거니 어떻게 도울 바를 배워나가겠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말하면 되지요?

 

‘...같아요’라는 말만 일단 쓰지 말고 말을 해봐요. 내가 다시 질문할테니까 해봐요. 글을 잘 쓰고 싶어요?

 

네, 잘 쓰고 싶어요.

 

봐, 그러니까 자기 생각이 분명해지네요.

 

 

 

자, 그럼, 자네가 써낸 글을 보고 이야기를 해봅시다. 자기 글에다 A, B, C, D, F 중 무슨 점수를 주겠어요?

 

저는 F요.

 

왜? F는 다시 써야 하는 건데?

 

음, 일단 1000자가 안되서요.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그런데 왜 1000자 이상 쓰기로 했을까?

 

왜죠?

 

그게 말이지, 줄넘기 하는 거 생각해보면 쉬운데... 매일 줄넘기 100개씩만 하는 사람이 있고 1000개씩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봐요. 그 두 사람이 줄넘기 500개를 하는 과제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100개씩 하는 사람은 힘들겠지요.

 

맞아요, 1000개씩 한 사람은 아주 쉽겠지요. 줄넘기 해서 근육 키우는 것처럼 글 쓰는 것도 근육을 키워두는 거예요.

 

아, 네...

 

자네도 줄넘기 해봐서 알겠지만 처음부터 1000개 하기는 어려웠지요?

 

네, 맞아요.

 

차츰 하다보면 늘게 되니까 지금 당장 1000개 다 못했다고 탈락하는 일은 없겠지요? 글쓰기 과제는 이제 시작인데. 그러니 지금 1000자 안되었다고 F를 주지는 않겠지요.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주실 생각이세요?

 

나는 지금 그대로면 D.

 

왜요?

 

자, 이번 과제에서 내가 어떤 점을 꼭 생각해서 쓰세요 했는데 기억나요?

 

두 가지라고 했는데, 내용은 기억이 안나요.

 

 

 

그 기준을 기억을 해야 글 쓸 때 그걸 맞추어 쓰는데... 평소에도 남의 말을 잘 안듣는 경향이 있지요?

 

네....

 

남의 말을 들을 때, 저 사람이 지금 저 말을 왜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고 듣나요?

 

아니요.

 

그럼 그것부터 연습을 해야겠네요. 자, 다시 이야기할테니 잘 들어요. 내가 이번 과제에서 이야기한 것은 우선 이 영상을 보고 듣고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할 것, 또 하나는 그걸 통해서 내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졌는지를 정리하라는 것이였어요.

 

아, 그거군요.

 

그렇죠. 지금 써낸 글을 보면 사실과 내 생각이 나누어져 있기는 해요. 그래서 D라고 했어요. 그게 구분이 안되어 있으면 F였지요. 그런데 그 부분들에 대한 근거가 약하고 두 가지 내용이 반복되고 섞여있어서 D예요. 지금 조금만 고치면 C가 되는데 해볼래요?

 

네!

 

.

 

.

 

.

 

자, 정리가 되니까 글 양이 확 줄었네요. 그렇지만 양은 차차 늘어갈 테니 평가하지 말고, 근거 부분을 보세요.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썼는데 어떤 말들이 어려웠던 거지요?

 

음, 대부분 다...

 

르네상스, 북유럽...이런 말들이 다 어려웠던 거지요?

 

네.

 

강사가 하는 말들이 처음 들어보는 말이면 당연히 어렵고 듣기 힘들어요. 그럴 때는 일단 단어 뜻부터 찾아봐야겠지요. 수업시간에 우리도 검색해가면서 공부하잖아요.

 

네.

 

단어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하는 게 공부이긴 한데 그건 사실 평소에 책을 읽으면서 그런 단어들을 꾸준히 접해서 자연스럽게 알아듣게 되는 것도 필요해요. 그게 진짜 공부이기도 하고. 사실, 단어를 안다는 것은 그걸 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네.

 

그래서 00님, 공부 정말 열심히 해야 해요. 수학 영어 문제 푸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사실 이런 공부가 더 중요해요. 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하는 것들. 지금부터 해볼까요?

 

네!

 

또 남의 말을 주의깊게 생각하며 듣는 것도 연습해야 되요. 무슨 말을 하는거지?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하면서 들어보기 연습도.

 

네.

 

 

 

 

 

....오늘은 여기까지.

 

글쓰기는 공부의 완성이다.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 하는 것이 글쓰기이고 글을 써야 자신에게서 무엇이 어디가 비었는지 스스로 점검을 하게 되고 채우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구체적으로는 ‘~같아요’를 안 쓰는 연습을 오늘부터 하는 것이다.

 

학생들 대부분이 잘 안되고 있는 ‘남의 말 잘 듣기’도 연습해야 한다.

 

 

 

다음에는 그 위에 ‘짜증나요’라는 말을 안 쓰고 느낌과 생각을 구체화 하는 연습을 할 것이다. 생각과 느낌을 뭉개서 하나의 덩어리로 분화가 안 된 채 있는 그 ‘짜증나요’.

 

그 표현을 분해하면서 생각도 분해하고 느낌도 분해해서 살 붙여나가기를 할 것이다. 이 것 역시 나도 연습해야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