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221 성찰일지 _SOS >
"최선을 다하자, 그러나 그러고 나서도 만약 실패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울 것이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성공이다."
이 문구는 요즘 내가 힘들거나, 무엇인가 겁을 먹을 때 내게 속삭이는 말이다. 나의 겉모습은 아주 편하고 자신감 있어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속은 하루에도 3번, 많으면 10번까지도 “나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인가?”라고 아주 많이 외치고 있다.
내가 내일학교에 입학하고 국내 대학에 들어가지 않는 결정을 함으로서, 내게 어떤 장점이 생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가장 중요한 1. 대화 교류 협력을 통한 수업방식 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은 대화와 교류 협력의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학생 수가 많기 때문에 그들을 경쟁시켜 학점을 통해 우위를 가리고, 그곳에서 승리한 자들에게만 점수를 부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물론 장학금도 그렇게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 교류 협력’을 통한 팀 활동은 내게 왜 중요한가? 사실 나 자신은 거의 15년 동안 사립재단의 입시를 위한 교육을 받아온 소산물이다. 그중 3년 정도 (고등학교 때)만 ‘나의 공부’를 하려고 부단히 부모님과 다투고 실랑이를 벌인 ‘진짜 나의 삶’을 산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교육에 관한 고민을 자주 했고, 그것이 결국 북유럽의 이상적인 정치와 교육 시스템 문화 등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가장 유학을 가고 싶은 나라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학비가 현재까지는 무료인 독일이다.
이들 나라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진정으로 서로의 공생을 위한 교육 가치가 있는지, 내가 상상해온 것들이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특히 덴마크의 공교육도 진보적인데, 덴마크의 대안교육은 얼마나 획기적일까? 하고 상상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자습 ( 말만 자습인, 밤 11시까지 학생을 가두는 감옥 )을 반항한 시기에 내가 가장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내가 하고 싶고, 배워보고 싶은 공부를 나 스스로 정하고 이해받으며 협조 받는 공부를 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었다. 내일학교에 페스티벌에 왔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했던 점은 ‘자주와 자율’이었다. 페스티벌에 분명히 봉사가 목적이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다 잘 하니, 나는 물고기가 물 만난 듯 이리저리 뛰면서 신나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내일학교였기 때문에, 문을 다시 두드릴 수 있었고 중간에 체험 과정 시 재정적인 문제가 개입되자 겁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 부모님 설득도 어렵게 하고, 학교에 입학한 나였기에 )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학교라면 ‘나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협력하는 방안’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2. 내일학교로부터의 나의 진로 생각이다. 나는 나의 진로를 항상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지금 이것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진로는 내가 짜내는 억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나의 이상과 자아실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냥 떠오른다. 나의 공부와 내가 하고자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꿈과 관련이 돼 있고, 스스로 충분히 그런 것들을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내일학교의 커리큘럼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지만, 거두절미하고 ‘토론’수업이 가장 독특하며 재밌다. 토론의 장 그 자체도 좋지만, 팀으로 협력하면서 중간에 준비하는 과정이 내가 가장 원하는 사회에서 일을 한다면, 이런 방식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갖게 한다. 정말이지, 일반학교에서는 이해받기 힘들고, 대화를 수월하게 하기조차 쉽지 않은데, 내일학생들은 ‘경청’할 줄 알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말’할 줄도 안다.
서로 대화하는 방식의 교육은 내가 일하고 싶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난 정말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기 때문에 여기서 공부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그런 것들을 이 친구들과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에 여건만 된다면 1-2년 정도 내일학교에서 나의 꿈을 펼쳐보고 싶은 것이다.
부모님의 눈에 보면, 해외에서 살고 싶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고, 외국남자랑 결혼하고 싶다는 애가 왜 산골에서 공부하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자아 토대를 이곳에서 충분히 습득할 수 있고, 오히려 국내대학 글로벌 경영 ( 영어로 수업하는 ) 4년 생활비보다 내일학교에서 정규과정을 공부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 ( 그 후에 어떻게 이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내게 더 충실한 바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왜 우리는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를 읽고 대학을 ‘투자재’가 아닌 ‘여가재’로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공부는 평생 공부다. 40대 50대 70대에도 나는 공부를 하고 싶고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대학도 가긴 가겠지만, 지금 당장 1,2년 안으로는 아닌 것 같다.
그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 대학에 ( 무엇을 구체적으로 배우는지도 모른 채 )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다. 오히려 자연과 교류하며 아침 운력을 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고전’책과 다방면의 시사 뉴스를 읽고 궁금증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성장하는 길일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를 추구’하는 민주적인 공부가 아닐까?
앞으로 진로를 잘 탐색해서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