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오전부터 차량 스케쥴을 잡느라 계속 예진선생님과 통화하고 병원이랑 통화했다. 하필 오늘 출장들을 가시는지 가려고 했던 병원에는 가지 못하고 맨 처음 알아보았던 병원에 가기로 하였다. 거기도 곧 출장을 나간다고 해서 서둘러서 출발을 해야 했다. 그동안 안락사 비용, 차량, 날짜 세박자가 다 따로 돌아 미뤄지고 미뤄졌던 터라 오늘은 꼭 가야만 했다.
점심 식사 이후 그렇게 전화를 받지 않으셨던 한별 선생님이 드디어 받아 빨리 가야 한다고 전화하여 다행히 제 시간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푸른바다님이 점심준비를 하며 나온 멸치를 명이에게 주었고 나도 갈 준비를 하여 명이를 학교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곧 바로 한별 선생님이 내려오셨고 함께 명이가 탈 자리를 셋팅해 주었고 명이를 태워 보내며 인사를 나눴다. 명이는 그렇게 나와 함께 영주로 출발하였다.
(언제인지 모르는 건강했던 명이)
가면서는 별다른 대화 없이 명이를 보며 갔다. 뒷다리에 힘이 없는 명이는 차가 흔들거리자 그냥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명이 머리를 쓰담으며 가고 있었다. 명이는 차가 흔들거리는 대로 이곳 저곳 흔들렸다. 오전에 정신이 없던 터라 명이랑 앉아 있는 동안 스르르 잠이 왔다. 명이는 내 손을 핥기도 하고 냄새도 맡고 쓰담는데로 얌전히 있었다.그렇게 영주에 도착할 쯤부터는 한별선생님과 길을 찾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병원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의사 선생님을 뵈었다. 명이는 차에서 움직이기 힘들어 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주사기를 들고 차로 오셨다. 나는 명이를 데리고 의사선생님 가까히 데려가고 명이를 잡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명이의 오른 앞발을 고무줄로 묶고 주사를 투여했다. 실감이 안날 정도로 명이는 그 전처럼 얌전히 있었고, 가는 지도 모르게 끝까지 얌전했다. 안락사를 처음보는 나는 어벙벙할 정도로 과정이 짧고 명이도 그렇게 갔다. 의사 선생님은 '잘 묻어주세요'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병원으로 갔다. 나도 명이의 사후경직을 보기가 힘들어 병원으로 함께 들어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죽은 명이를 차 뒤에 놔두고 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명이를 처음 보고, 내일학교에 와서 같이 놀고 했던 것들을 기억했던 것 같다. 명이가 눈도 잘보이고, 잘 듣기도 하며, 잘 뛰어다닐 때가 생각이 났다. 아마 명이가 앞으로 좋은데로 가서 다시 그렇게 되길 원던 것 같다. 그동안 명이를 함께 기르며 같이 돌봐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학교에 남긴 명견패)
모두 감사합니다.
마음에 명이를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