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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심은 식물들이 다 말라죽을까 걱정되던 가뭄은 이제 가고, 하루 걸러 비가 오는 축축한 장마철이 되면서 관수 걱정은 덜었다. 하지만 정원의 오래된 적,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처음 정원을 만들었을 때 우리는 태평했다. '멀칭'이라는 신기술이 있대! 다 덮어놓으면 잡초가 안 자란다는걸? 때마침 당시 정원을 조성할 때에는 산에서 막 캐낸 뽀시시한 마사토를 덮었고, 그래서 잡초도 적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조성한 웰컴가든, 그리고 작년에 조정한 미라클 가든은 이 동네 풀씨란 풀씨는 다 머금은, 그야말로 생명력이 넘치는 흙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돌아서면 풀, 풀,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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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추로 추구의 정원 쪽을 돌보느라 웰컴 가든을 버려두었는데, 그러다보니 일주일 새 잡초가 어마무지하게 자랐다. 특히 그라스쪽이 압권이다. 아무래도 경사지이다보니 발 딛기가 힘들어서인지 잘 안 내려가게 된다. 게다가 바랭이는 기름새같은 그라스와 잘 구분도 되지 않는다. 아, 대체 학생들은 왜 그라스를 섞어심기한 것인가... 


하지만 그만큼 일한 티가 난다는 것이 좋다. 뽑기 전에는 정글같던 곳에서 잡초를 뽑다보면 거의 그라스를 발굴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심었던 식물이라 더 정이 가는 것 같다. 딕시랜드, 제브리너스, 모닝라이트, 아다지오... 잡초를 뽑다보면 강제로 식물 동정(잎이나 줄기만 보고 식물을 구분하는 것)을 하게 된다. 주인처럼 천연덕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바랭이와 비름나물, 질경이며 명아주를 쑥쑥 뽑다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

 

아침부터 하늘이 심상찮더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사실 해가 내리쬐는 것보다는 비가 오는 게 좋다. 이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밭에 가려고 '가슴장화'도 입고 왔더니 더 두려울 게 없다. 가슴장화는 방수 천으로 된 멜빵바지같은 것인데, 장화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다. 몸이 젖을 염려가 없다는 건 이것저것 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경사지에서는 더 편안하다. 모르고 보면 수산시장에서 출장나온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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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빗줄기는 잠시 내리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그라스 쪽의 잡초를 모두 뽑고 층꽃과 배초향이 있는 경사지로 이동했다. 여기도 가관이다. 그라스보다는 자리를 잘 잡았지만 바랭이의 습격에는 당해내기 어려운지 층꽃이 이리저리 굽어져있다. 내일학교 정원팀의 학생 가드너인 참누리가 나를 '경사지의 여왕'이라고 호명한 뒤로는 왜인지 경사지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내가 심은 층꽃인데 이렇게 바랭이 등쌀에 시달리고 있다니 좀 미안했다. 황금배초향은 벌써 꽃이 피었다. 알싸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향이 강한 식물 주변에서 일하면 왜인지 피로를 잊고 일하게 된다. 박하, 배초향, 애플민트, 홀리 바질, 레몬그라스 모두 다 좋다. 내년에는 꼭 향이 강한 허브를 집중적으로 심은 정원을 꼭 만들고 싶다고 다시 생각한다.

 

눈에 밟히는 잡초를 보이는대로 다 뽑고 싶은데 어느새 시간이 다 지나버렸다. 하루 일과가 기다리고 있으니 마냥 잡초삼매경에 빠져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경사지의 식물들을 상당히 '발굴'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하다. 내일도 다시 와야겠다. 자꾸만 잡초에 시달리는 정원식물들이 눈에 밟힌다. 아무래도 정원은 지나가며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땀흘리며 가꾸는 사람의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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