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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내가 다닌 학교는 운동장 건너에 목조 건물로 별관이 있고

그 별관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선 2층 복도 왼쪽 끝에 도서관이 있었다.

사실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지금 생각하면 책을 모아둔 서고 같은 분위기였다.

서고가 따로 있고 그 옆 교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또 그 시절엔 지금처럼 개가식 도서관이 아니라 거의 모든 도서관이 폐가식이라

도서관 앞에 도서카드가 잔뜩 들어가 있는 서랍장이 있어

그 카드들을 뒤적여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찾아 종이쪽지에 적어내면

사서 선생님이 그 책을 서가에 들어가 찾아서 빌려주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책 뒤에는 대출 카드라는 것이 꼭 있어서 누가 언제 빌려갔는지 일일이 다 기록을 하게 되어 있었다.

어떤 때는 책을 빌려서 대출카드를 먼저 보기도 하였다.

내가 읽은 책을 비슷하게 읽는 선배들도 있어 책마다 같은 이름이 적혀있는 일이 있어 이름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 중의 하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정말 공부가 재미없어서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곤 하였는데

하두 책을 빌려가니까 사서 선생님이 어느 날은 서가로 들어와서 책을 직접 찾아가라는 특혜를 주셨다.

그 이후로는 서가에 들어가서 책 구경하는 재미로

점심시간엔  도시락을 얼른 먹고 도서관에 뛰어가곤 하였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바로 올라가서는

학교 문 닫는다고 수위 아저씨가 쫒아낼 때까지 서가에 박혀있곤 하였다.

지금도 비가 오던 날 오래된 목조건물에서 나던 나무냄새,

오래된 책에서 나는 종이냄새 그리고 혼자서 들어가 있던 서고의 기분 좋은 조용함과 찬 기운이 기억난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들은 순서도 없고 계통도 없이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는 방식이었다. 남독에 난독이었다.

어느 날은 독침술(毒針術)이란 책을 빌려와서 읽기도 했다.

물론 내용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끝까지 읽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자어가 많고 모르는 단어 투성이였으니까.

아, 당시에는 또 대부분의 책이 한자 겸용이어서 덕분에 한자를 많이 익히기도 하였다.

 2학년 때는 반야심경 해설을 읽고 불교에 심취하여

대학 신입생 시절에 출가를 감행하는 일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때 누군가 책읽는 것을 조금만 도와주었더라면, 생각의 깊이가 좀더 생기고

지금 보다는 좀 더 똘똘해지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지금도 그 때 습관으로 일관성 없이 여러 권 쌓아두고 이리저리 보는 일이 많다. 깊이 보기보다는 많이 보는 편이다.

 

요즈음 내일학생들이 ‘독서 감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른들은 누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였겠지만,

나 역시 그런 감옥에는 한 번 갇혀보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 마음껏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는 일은 정말 쉬운일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너무도 뻔한 말을 한번 하고 싶다.

 

학생 여러분, 책을 부디 많이 읽으십시요!

 

 

  • jarim 2017.03.11 00:25
    잊었던 옛 시절이 떠오르네요. 이번에 어른들은 독서감옥에 대한 부러움을 다 가진 것 같으네요. 단 하루라도
    감옥에 들어가고 싶으시지요?
  • 한별 2017.03.13 08:50
    책을 마음꺼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 한섬 2017.03.18 14:31
    충경쌤의 여고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네요~~우리들도 언제 한번 독서감옥에 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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