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3 18:07

눈이 오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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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오면 나는

 

새벽 5시 방한복을 챙겨 입었다. 왠지 좀 무거운 듯 하나 훈훈하다. 러시아 사람을 연상시키는 검고 두터운 모자를 쓰고, 이만하면 됐지!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어 본다. 아직도 구름이 잔뜩 흐리게 덮고 있는 새벽은 어둡고 얼어붙어 있다. 운동화끈을 조이고 어두워도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눈밭 위를 서벅 서벅 또렷한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자박 자박 걸었다. 별빛조차 드문데 눈은 환하게 반사빛을 보여 온다. 그 언젠가 아들과 함께 눈밭에 엎어지며 사람도장 찍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난다. 그 때 참 눈이 많이 왔었지! 눈 싸움을 하며 웃고 즐기던 그 아이는 이제 훤훤 장부가 되었고. 한 때의 즐거움은 깔깔 거리며 웃던 모습으로 눈밭에 스미어 갔다. 저만치 세워둔 차 가까이 가자 짧은 눈희롱은 금새 아쉬운 감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내려갈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둠이 산산히 깨어지는 순간이다. 눈밭을 밟는 낭만도 흩어졌다. 라이트 불빛에 비친 눈이 제법 두께를 보인다. 그나마 눈발이 멈춘 상태여서 다행이다. 저수지 옆을 지나 학교 앞에 주황색의 잠자듯이 서 있는 제설차가 보인다. 타고 간 차를 주차장에 세워 두고 제설차에 올라 탔다. 먼저 예열을 하고 시동을 걸었다. 두둥 둥둥둥 시동 걸리는 소리가 잠자는 마을로 퍼져 갔다. 실내의 히트를 켜고 라이트를 켰다. 하얀색의 도로가 훤하게 비춰온다. 제설 장비의 전원 스위치를 올리고 모래 살포기도 시동을 걸었다.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도 무사히 제설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아 1단을 넣은 다음 출발하였다. 15톤 덤프의 앞에는 제설 장비가 장착되어 있고 적재함에는 살포기가 실려 있다. 살포기 안에는 모래가 가득 들어 있어 차는 그야말로 육중하다. 아직도 어두운 도로를 둥둥둥 미끄러지듯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곱게 내려앉은 눈이 벗겨진다. 사이드밀러로 뒤에서 흩뿌려지는 모래가 보인다.

제설작업중.jpg

 

길이 보인다. 또 다른 설국으로 들어가는 하얀길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나는 가차없이 밀어 붙인다. 지나온 자리는 모래가 차분히 깔려 있다. 아주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른다. 영양군으로 넘어가는 논골재이다. 나는 이 고개가 제일 편하다. 다른 재 보다 고도가 조금 낮은 편이어서 올라가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동해안쪽으로 눈이 많이 오면 논골재에도 눈이 많이 쌓인다. 이즘되면 눈은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미 치워내야 할 위험한 물건 즘으로 전락해 버린다. 위험에 빠뜨릴수도 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우리의 정서를 매혹시키지만 동시에 테러범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테러범이 될 소지가 있는 부분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뽀얗게 부드러운 백설을 길 어깨로 밀어 내는 행위는 눈에 대한 테러이기도 하다. 테러를 방지하기위한 테러 즘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그렇게 둥둥둥 차는 정상까지 올라갔다. 여기가 내가 맡은 부분의 구역이다. 고개 너머에는 아무리 폭설이 쌓여 있어도 못 본체 되돌아 내려 와야한다. 어느날인가 뒤로 따라오던 승용차 한 대가 고개를 넘어가지 못하고 고개 위에서 되돌려 다시 내려 갔다. 정상에서 잠시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되돌ㄹ려 내려 왔다. 어둠이 조금 가시기 시작한다. 내려 오는 길은 속도가 조금 빨라진다. 그렇다고 빠르게 달리지는 않는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모래를 천천히 뿌려 주기 위해서다. 논골재를 완전히 벗어나면 곧 바로 섬밭재로 올라간다. 섬밭재는 논골재보다 많이 높다. 허나 이곳은 양지 바른 곳이다. 처음 이 높은 곳을 올라갈 때에 숨이 헉헉 거렸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 있다. 그리고 다른 익숙함도 있다. 이 고개 정상에 농가가 두어채 있는데 그곳의 사람들이 무척 고마워하며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이곳을 오를 때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며 오르게 된다. 이미 사위는 밝아졌다. 올라가는 길에 햇살이 비추인다. 가파른 경사길이지만 햇살 때문인지 눈이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농가앞을 지나면 곧 바로 정상이다. 안동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에서 차를 돌려 내려오면 그집앞에 아주머니 한분이 서 계신다. 손에는 먹을 것을 들고 차를 세운다. 음료수와 사과를 올려 주시며 고맙고 고생한다고 말은 전하다. 그렇게 몇 년동안 낯익은 얼굴이 된 그 분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오히려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내려오는 길에 조금이라도 더 눈을 치우려 애쓰며 내려 왔다. 그리고 힘나게 다른 고개를 향하여 달린다. 나의 구역중 가장 위험한 공이재이다. 급경사에 급커브인 이곳을 지날 때면 초 긴장 상태가 된다. 무사히 그곳을 지난다. 이 고개의 정상을 넘어서 공이 마을까지 눈을 치운다. 공이 마을 초입까지 가서 되돌아 올라온다. 그렇게 왕복하고 나면 임무를 완수 하는 것이다. 오늘도 마무리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비어 있는 모래통에 제설용 모래를 실으러 봉화읍까지 갔다 오는 것이다. 눈이 오면 나는 바빠진다.

 

 

  • 혜원 2017.01.05 02:02
    한별님. 그림 그리듯 쓰신 한편의 글이 참 감동스럽습니다.
    학교의 살림을 위해서 겨울마다 애쓰시는데, 안전운행 하시고 건강도 유의하세요.
  • 한별 2017.01.05 08:39
    ㅎㅎ 감사합니다.~
    새해도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 지성심 2017.01.05 09:45
    한별님의 글을 읽으니 참으로 애쓰심이 전해져오네요..
    모두 잠들어있는 고요한 새벽녘에 초긴장하시며 제설작업하시는 한별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을과 생명을 지키시는 겨울의 파수꾼 한별님.. 모쪼록 몸조심히 작업하시길 바랍니다~~
  • 한별 2017.01.05 15:14
    아이구~ 서울에서 애쓰시는 님의 애쓰심만 하겠습니까?
  • 내일학교농장 2017.01.05 11:53
    그렇지 않아도 어제 학교 정문 앞에 거대한 몸체의 차량이 서 있는 걸 보았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들이 있었지요. 하나는 "야~ 운전석에 앉으면 세상이 아주 달리 보이고, 자신도 큰 존재로 느껴지겠다."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 몸체가 너무 커서 시골 곳곳의 작은 길과 언덕길에서는 매우 위험할 텐데,
    그래서 올해 조금 겁나는 게 괜찮아졌다고 하셨구나!" 했지요..

    애많이 쓰십니다~
  • 한별 2017.01.05 15:16
    염려해주셔셔 감사 합니다.
  • 한빛 2017.01.05 12:54
    단어 하나 하나가 정말 작품이고 예술 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마치 제가 제설차에 앉아 있는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네요^^
    작가 등단하셔야죠^^
  • 한별 2017.01.05 15:15
    감사합니다... 많이 노력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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