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1 09:15

밥 한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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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그릇

 

 

햅쌀 두 공기와 집사람이 보내준 현미 반공기와 약간의 혼합곡을 섞어서 물에 씻었다, 뿌연 쌀뜨물을 서너차례 버리고 새로운 물을 받았다. 맑은 지하 암반수면 아래로 투명하게 곡알들이 뽀얀 속살을 보이고 있다. 손을 펴서 물 높이를 가늠하고 전기 압력 밥솥에 쏟아 넣었다. 배부르게 떨어지는 곡알들! 이제 조금 지나면 말랑 말랑 익어서 따끈한 밥이 되겠지! 밥은 내가 짓는 것인지 전기 밥솥이 짓는 것이지 따질 것 없이 익을 동안 기다리면 된다. 그동안에 김치라도 썰어 두어야 겠다. 서툰 칼질로 썽둥썽둥 김장 김치를 썰었다. 올해 김장은 짜지 않아서 좋다. 밥이 없으면 나는 하루 동안 힘없이 앉아 있어야만 한다. 밥심으로 일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참 일할 때는 그것을 절감할 때도 있다. 한끼 식사는 한나절 일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하고 싶은 일 해야 될 일 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내일을 설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하루 세 번 씩 몇십년 동안 먹어 왔던 밥이다. 한끼만 걸러도 배고파서 아우성을 치게 된다. 그런데도 감사해 할 줄 모르면 안되겠지, 매일 하루 세 번을 꼬박 꼬박 먹는데 소중하게 생각할 겨흘이 나지 않는다면 참 미안한 일이다. 정성이 담뿍 담긴 곡식이 밥이 되어 나를 보장 해 준다. 나는 그 정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밥은 누군가와 같이 먹을 때가 맛있는데 요즘은 혼자서 먹는 사람이 많아 졌다고 한다. 나도 요즘은 혼자서 먹을 때가 많다. 아침 밥상은 하루를 시작하는 바쁜 심정이 있어서 후다닥 먹고 점심 밥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일 중에 먹는 밥이라 든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먹고 저녁 밥상은 형광 불빛 아래 어두워져 가는 산야를 바라보며 안식의 시간으로 삼아서 먹고 그나마 찬찬히 먹으려 하고 저녁 식후에는 차 한잔을 마시면 밥먹은 풍경도 여유롭다. 여유 많은 감사한 식사지만 가끔은 쓸쓸하기도 하다. 겨울이 깊은 산골에선 사뭇 외로움을 탈 수가 있는데. 유독 밥 먹을 때 외롬을 많이 느낀다. 아마도 밥상에서는 정이 많이 흐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두런 두런 얘기도 나누고 서로 찬을 권하기도 하던, 어릴 때 부모형제가 만들어 준 걸인의 반찬일망정 친절한 밥상에서 맛 보았던 정일게다.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먹는 밥을 더 좋아하고, 여럿이 어울려 먹을 때가 정겨운 것이다. 같이 밥 먹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므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먹어야겠다.

 

얼마 전에 아내와 함께 외식을 하였다. 오래만에 만들어진 자리였다. 우리 부부는 일년에 몇 번 정도 얼굴을 본다. 이런 만남이 몇해동안 계속되는 우리는 만날 때 마다 좋은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기에 모처로 나갔다. 나들이하기엔 짧은 시간 이지만 포근한 겨울날의 따사로움을 맛 볼 수 있었다. 밥은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서도 그 행복감에 온도차이가 있으므로 최대한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마음 쓰면서 모처럼의 나들이가 즐겁기를 바랬다. 전에 없이 식당을 쉽게 결정하였다. 메뉴도 금방 정하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다 큰 아이 얘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가끔은 웃으면서 때로는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짧은 만남을 찰지게 보내려 이어지는 얘기 속에서 서로서로 아픔을 보듬어 주려 애쓰는 시간이었다. 가벼운 산책은 이번엔 생략 하고 돌아 왔다. 웬지 모를 행복감이 나를 감싼다. 그 여운은 오후 내내 일하는 나의 가슴에서 일렁거렸다. 긴여운이 남는 식사였다.

 

행복의 여운이 길게 남는 식사! 얼마나 소중한 식사인가! 소중한 식사는 공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깨우쳐 간다. 언젠가 스승님과 점심 공양을 하던 생각이 난다. 고운 손길로 하나 둘 씩 정갈한 찬기가 올라오고 가지런한 수저에 서너가지 반찬은 맑은 빛으로 빚어놓은 듯하였다. 잠시 묵상으로 감사를 표하고 몸가짐을 조신하게 밥을 드는 중에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하는 중에 먹는 밥이라 든든하기만 하여도 만족한데, 그저 어렵기만 한 그 공양 시간들이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보면 극진한 존중을 받았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든다. 사람다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던 존중감은 나를 이 세상을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보름 동안 매일 매일 소중한 점심공양이 되었다. 여전히 공양의 깊은 의미는 모르지만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행위로 깊은 존중이 함께 한다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나도 그런 공양을 하고 싶다. 밥이 다 익었다. 전기 밥솥의 두껑을 열어 보니 뜨거운 김이 한풀 올라오고 그 사이 사이로 윤기 흐르는 밥이 톡톡하다. 차마 주걱질을 하기 아까워 하는 마음은 또 무엇인가? 혼자서 나즈막히 너머가는 어둑저녁을 창밖으로 내어다 보며 밥 한그릇에 담긴 의미를 그려본다.

 

  • 혜원 2017.02.02 17:46
    감사함이 가득한 한별님의 글이 감사하네요. 요즘은 저도 일하는 중에 서서 간단히 그저 때우듯이 밥을 먹곤했는데, 제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내일학교에서 그간 조미료 없는 음식만 먹다가 요즘에는 MSG 범벅인 음식들을 끼니로 먹게되니 몸이 편안하지 않네요.
    건강하시죠?
  • 한별 2017.02.03 20:56
    에그..식사 걸러지 마시고 건강 하게 지내세요.
  • 시진 2017.02.02 22:40
    아무래도 한별님은 수필집을 내셔야 하겠습니다.
  • 한별 2017.02.03 2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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