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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년 전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박람회에 나가 내일학교를 홍보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는 내일학교 설명회를 담당하게 되었다.

박람회에서는 수많은 외국 학교며 유학업체들 사이에 작은 부스를 차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붙들고 “저희는 한국에 있는 대안학교인데, 미국에 유학센터를 운영하고 있구요...”라고 말을 걸면서 수백 번의 거절을 당한 끝에 몇 건의 상담을 하고 돌아왔다.

지난주 토요일 진행된 설명회에는 아홉 가정의 가족들이 방문하여 학교부터 저수지, 웰컴 가든, 텃밭, 마방 신축 현장과 농장 등의 시설을 둘러보고 도서관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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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나 설명회를 하고 돌아오면, 내일학생들은 나에게 말을 건다. ‘오늘 어떠셨어요? 여학생들 많아요? 체험 오는 학생들은요? 힘드셨겠어요.’라면서 종알종알 떠든다. 새 친구가 생기게 될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면 나는 농담처럼 말한다. ‘조금 힘들었어. 그렇지만 옛날의 너처럼 혼자서 방에서 울고 있는 애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애들이 오려면 힘들어도 해야지.’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수줍은 듯 웃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려왔다.

내일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해서 다니는 학생들은 참 운이 좋은 아이들이다. 지금이야 ‘내일학교에 안 왔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안 가요’라며 웃지만, 사실 내일학교에 오기까지 학생과 학부모님들은 엄청난 불안과 고민을 헤쳐 나와야 한다. 한국에만 해도 수많은 대안학교가 있고, 그 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인지는 확신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사회의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까? 1기 졸업생처럼 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그냥 이대로 일반학교 다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등등..

그래서 박람회장이나 설명회에서 학생이나 부모님들을 만날 때면, 나는 몇십 년 만에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혜성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일학교라는 학교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우리가 하는 교육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도 믿기 어려워 한다. “그게 정말인가요? 성공한 학생들은 특별한 경우인 것은 아닌가요? 우리 아이도 선생님이 성공시켜주실 수 있나요? 시설이 그렇게 넓어요? 학생들이 서로 잘 지내나요?” 등등. 내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 순간 손을 잡으면 함께 갈 수도 있는 것이고, 간발의 차로 스쳐 지나가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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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나는 자꾸 절박해졌다. 박람회장에서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만약 내가 새로 나온 청소기같은 것을 판다면,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소기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의 삶이 크게 달라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은 말 그대로 삶을 통째로 바꾸어버린다. 내일학교에 온 아이들은 모두 내일학교에 왔기 때문에 남다른 존재가 되었다. 수많은 의구심과 불확실성을 견디고 힘겨운 과정을 감내했기에 그렇다. 그러니 내가 박람회장에서 잠깐 졸거나 딴청을 피운다면, 내일학교에 와서 삶이 바뀔 수도 있었을 학생 한 명이 그 가능성을 영영 모른 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자리를 비우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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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박람회와 설명회에서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과거의 나는 일반학교의 담장을 벗어나면 나는 ‘세상’ 밖으로 추방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 밖은 ‘세상의 끝’이고, 그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고, 평생 나는 낙오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수용했다. 외로웠고 힘들었고 아무런 즐거움도 기쁨도 없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전인학교에 참여해서 지금 내일학교까지 12년째 함께하고 있는 것은, 나의 10대를 관통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너무나 커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박람회장과 설명회에서 학부모님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설득하는 것은 오히려 쉬웠다.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고 사회에 던져져 살아 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두 마디만 해도 충분할 때가 많다. “시험만을 위해 공부할 시간에 진짜 삶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청소년기에 할 수 있어야지요.”라는 말, “학교가 어떤 학생이든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곳이어야지, 성적 좋은 애들만 골라 뽑아서 대학 보내는 게 무슨 명문학교에요.”라거나, “나쁜 학생이 어딨어요. 교육이 나쁘고 선생님들이 무능한 거지요.”라는 말에 학부모님들의 눈이 번쩍하고 빛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한다.

문제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어른이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진심으로 믿을 만한 어른을 평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귀기울여주는 사람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사람도 만난 적 없을 것이다. 일반학교건 대안학교건 학교란 본인들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감옥'이고, 어른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못하게 하는 '간수'들이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실제로 학교는 감옥이고 어른들은 간수이니까. 그래서 마찬가지로 ‘어른’인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좀처럼 그들의 내면에 가서 닿지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그 아이들은 힘들고, 외롭고, 막막한 세계 속에 있다.

그런데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어쩌면 답은 내일학생들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회에 방문한 가족 중에서, 부모님은 내일학교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는데 함께 따라온 학생은 영 싫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시니어 내일학생 ‘밝은해’가 출동하여 그 학생을 만났다. 빨리 집에 가자고 졸라대던 학생이 밝은해와 이야기하면서 조금 얼굴이 풀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밝은해는 대학생처럼 의젓하게 말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주변의 학생들이 같이 도와주고... 처음엔 조금 적응기간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꽤 재미있어요. 선생님들이 간섭하거나 하시는 게 아니니까요.” 나중에 밝은해에게 어땠는지 물어보니, “학생이 내일학교 오는 걸 두려워하더라구요. 뭐,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라고 멋쩍어했다.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줄 아는 열아홉 살짜리 앞에서 나는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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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설명회며 박람회에서 1기 졸업생들을 ‘컬럼비아 버클리 미국 명문대...’라면서 홍보하지만, 내가 그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어떤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걸어온 길이 달랐기 때문이다. 1기생들은 아무런 ‘객관적’인 성과나 ‘확실한 보증’이 없던 시절 일반학교를 그만두고 전인학교에 왔고, 그 전인학교가 교육청의 간섭으로 보통 학교로 변질되자 원래 받고 싶었던 교육을 받기 위해 내일학교를 만드는데 함께 참여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신뢰를 보내는 것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1기생들은 그것을 해 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성공이 나의 성공처럼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어쩌면 우리는 좀더 크게 떠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일학교의 자람도우미와 학생들이 하나의 길을 20년간 걸어온 우직함에 대하여. 과거의 교육제도나 성공모델이 아니라 앞날을 바라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용기에 대하여. 어린 나이에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는 명민함과, 그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끈기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계속 지켜가는 삶의 가치에 대하여.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지키려 하는 교육의 가치를 함께 키워갈 수 있는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런 학생이 있다면 혼자만의 방에서 외로이 울고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손을 잡고 함께 날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혜성은 한번 지나가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돌아오니까.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운 것이니까.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기적같은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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