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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비밀인데, 내가 아무리 내일학교의 자람도우미라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학생들이 예뻐보일 때와 미워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지만 자람도우미인' 우리의 고충은, 학생이 아무리 예뻐보여도 예뻐할 수 없고, 미워보여도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낄 때 애써 숨기거나 가식적으로 위선을 떨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다. 자람도우미와 학생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 그것도 성장과 변화 중에 있는 존재이기에 생기는 많은 상황들이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예쁜 학생은 노력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이 '노력'이라는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제대로된 노력을 하려면 먼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려보고,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성실하고 열성적으로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반드시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벽'에 부딪히는데, 그 벽 앞에서 몸부림을 치고, 기어올라가 보고, 들이 파보고, 뜀뛰기를 하고, 때로는 울먹이다가 지쳐서 도움을 청할 때에는 학생들이 참 예뻐 보인다. 물론 본인들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예뻐 보이는 부분은 역설적으로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쁘다고 막 예뻐할 수 없다. 이럴 때에는 도움을 청하는 부분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한테 비슷한 상황이 있었나? 극복했던가? 어떻게 했지? 이 학생에게는 뭐라고 얘기를 해주지?' 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면 지금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부럽기도 하고('나는 서른 살 넘어서 해봤던 고민인데!'), 때로는 나보다 더 진지하게 성찰하고 시도하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운 학생은 어떠한가. 미운 학생이 무엇인지는 역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미운 학생은 스스로의 가치를 잘 모르는 학생이다. 그래서 노력을 포기했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용을 쓰고 있는 학생이다. '전 그런 거 못할 것 같아요...', '전 이 정도에서 그만할래요. 지금도 괜찮아요.', '전 할만큼 했는데요!' 같은 말을 듣거나 표정에서 그런 모습이 보이면 나는 혼자 끙끙대며 가슴을 치곤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 학생이 지금의 허물을 벗고 아름답게 성장했을 때의 모습이 보여서 안타깝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나 자신의 과거 혹은 현재의 모습이 그 '미운 모습'에 겹치기 때문이다. 자람도우미가 사람이라는 것은 이 뜻이다. 나의 미운 모습이 학생들에게서 고스란히 보인다. 그것이 참으로 괴롭다.

 

그래서 미운 학생이 도움을 청할 때에는 예쁜 학생보다 몇배는 더 고민이 되고, 오래 걸리고, 깊이 숙고하여야 한다. 예쁜 학생이 도움을 청하는 상황은 내가 이미 극복했던 상황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운 학생이 도움을 청할 때면 '나도 다 극복 못했어! 어떻게 해야되는지 사실 정확히는 잘 몰라!'라고 외치고 포기하고만 싶어진다. 그리고는 나 자신이 예전에 직면하기 싫어서 꽁꽁 싸매어 상자 안에 넣어두었던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어서 먼지를 털고 다시 마주해야 한다. 

 

지금은 생애기획 시즌이라 학생들이 계속해서 발표를 하는데, 나는 역시 계속해서 학생들의 생애기획 발표 리허설을 사전에 검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학생들은 점점 더 진지해지고, 지난번과는 다른 양상으로 노력하고 다른 양상으로 벽에 부딪히고, 예뻤던 학생이 미워지고, 미웠던 학생이 예뻐지고, 학생이 미운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 이야기였음을 알아차리는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 위에서 말했듯, 문제는 어떤 학생이 예쁘고 어떤 학생이 밉고가 아니라,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학생을 예뻐하고 미워하고 차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얼마나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일학교의 교육과정은 자람도우미와 학생이 펼치는 일종의 진검승부라는 것이다. 진짜 검도와 차이가 있다면 학생이 칼이고 자람도우미가 숫돌이라는 정도일까? 학생은 성장하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혀오고, 자람도우미는 그 칼을 벼려내기 위해서 자기 자신도 가차없이 갈려나가는 경험을 해야 한다. 

 

다음은 오늘 학생들의 생애기획 발표 리허설을 보고 쓴 의견서 중, 내가 쓰고서 오히려 내가 더 위로를 받았던 의견서이다.


생애기획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목차는 잘 구성됐고, 어떤 건 별로고... 이런 식으로 보게 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견서에도 여러번 밝혔듯이, 생애기획은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을 조망하고, 그에 비추어보아 지난 삶의 의미를 다시금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생애기획 구성에서는 이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구상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식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신년계획'을 세울 때 하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나는 올해에도 다이어트를 못했고, 영어공부도 못했고, 취직도 못했고...' 이런 식으로 자기를 구박하는 형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신기하게도 혼잣말이라기보다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라는 별개의 존재가 대화를 하는 양상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의 대화도 사람들간의 대화와 마찬가지로 구박하고 탓하고 못살게 굴면, '과거의 나'는 상처입고 고립되어 숨어버리고 말지요. 자신과의 대화를 부모자식간의 대화라고 생각해보세요. 아이는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완벽하거나 모든 점에서 훌륭하지 않고, 때로는 실패도 경험하고, 게으른 모습을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왜 이런 것도 못하니? 더 노력해야지! 누구누구는 잘 하는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부모가 있고, '뭐가 힘들었니? 네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건 뭔지 얘기해봐.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떤 아이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지난날의 자신과 대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그 대화에 임하는 태도를 평가하고 혼내고 구박하려고 하지 말고, 힘들었던 점을 이해해주고, 그래도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전체 생애기획의 인상이 확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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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어떻게 해야 나를 구박하지 않고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울 수 있을까. ⓒ Garam Kim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가히 '나 구박하기'계의 일인자였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러니 얘들아, 우리 같이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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