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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 Davis 773

 

 


"대안학교에 계신다고요, 그러면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지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 자기소개를 하면, 상대방은 으레히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마도 '국어, 영어, 수학'같은 과목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그냥, '영어와 글쓰기를 담당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물론 이 대답은 어딘가 실제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설명을 하자면 대화가 한없이 길어지기 때문에 나는 그냥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


'자람도우미는 내일학교에서 무엇을 하는가'라는 문제는, 내일학교에서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배움이 이루어지고, 사람이 성장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혹은 '학교, 선생님, 학생은 이런 것이다'라는 고정된 틀을 가지고 있어서, 어디에서부터 대화를 풀어가야 할지가 쉽지 않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공부를 곧 '지식의 습득'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있는 것을 마치 타이핑하듯 머릿속에 입력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툭 하고 튀어 나와야 제대로 '공부 좀 한다'고 여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란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잘 암기하고 누가 물어보면 즉시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학생을 말한다. 이 구조에서 선생님은 그 지식을 줄줄줄 읊어주는 사람이고, 학생은 그것을 받아먹는 사람이며, 학교는 그걸 잘 먹으려 하지 않는 학생에게 강제로 지식을 먹이는 곳이다. 여기에서 대체 왜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고, 수학 문제를 잘 풀어야 하고, 역사를 배워야 하고, 영어를 익혀야 하는지 대해서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가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주변 학생들에게 무슨 신성 모독이라도 한 듯한 눈초리에 시달리게 된다. 

 

나는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내일학교에서 자람도우미로 있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참 오랫동안 고민했다. 대체 왜 학교교육에서는 국영수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대학입시에 중요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교육과정을 이렇게 설계한 사람들이 이걸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대학입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교양인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요건들이 있을 것이고, 하나의 배움이 그 다음의 배움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구조가 있을 것이다. 누구도 그 이유와 제대로 배우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나는 혼자 길을 찾아 헤맸고, 나중에 내일학교에 와서는 자람도우미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방법을 찾았다. 

 

처음 그 실마리를 찾았던 것은 1기 졸업생인 '하늘마음 민진하'가 처음 내일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지금 하늘마음은 아이비리그의 컬럼비아 대학교에 다니며 통계수학을 떡 주무르듯 하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14살에 구구단을 다 못 외워서 '수학 바보'라는 핀잔을 듣곤 했다. 당시 나는 이제 막 입학한 내일학교 1기생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에 있는 '계산이 필요없는 수학 문제'가 떠올라 학생들에게 문제를 냈다. 

 

"곰이 있었어. 그런데 이 곰이 너무 배가 고픈 거야. 그래서 집을 나서서 남쪽으로 5km를 걸어갔어. 근데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래서 다시 동쪽으로 5km를 걸어갔어. 그런데도 먹을 게 없어. 그래서 다시 북쪽으로 5km를 걸어갔어. 그랬더니 집이 나오는 거야. 자, 이 곰의 색깔은 뭐게?"

 

넌센스 퀴즈가 아니라, 수학 문제이다. 이것은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How to Solve it)'라는, 수학교육에 대해 고전으로 꼽히는 책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예제이다. 내일학생들은 이미 이 문제를 알고 있는 학생도 있었고,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나에게 답을 알려달라 조르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하늘마음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이마에 주름을 빡 잡고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가, 지구본을 가지고 방안을 빙글빙글 돌다가, '저한테 절대로 답 알려주시면 안돼요!'라고 못을 단단히 박고는 급기야 네 시간 동안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고민을 하더니 갑자기 어느 순간 얼굴이 환해져서는 나에게 달려와 답을 말했다. 정답이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또 다른 거 없어요?"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는데, 수학이 공식을 외우고 방정식을 풀고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자체를 훈련하는 일종의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문과인데 왜 수학을 배워야 하나요?'같은 질문이 나올 이유가 없다.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 상황에 부딪히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문제 상황에 맞닥뜨려 누군가는 회피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도 있고, 편법을 써서 쉽게 가려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해결책을 찾아낼 수도 있다. 진하가 나에게 알려준 것은 수학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이고, 그렇기에 수학을 공부할 때에는 공식을 외우거나 답을 보고 해법을 익히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꼭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훈련이어야 하고, 그 답이 꼭 한 가지일 필요도 없었다.

 

알게 모르게 하늘마음의 이 '가르침'은 나의 내일학교 자람도우미 생활에 꽤 큰 영향을 미쳤다. 하늘마음이 '곰 문제'를 스스로 풀어낼 때까지 내가 한 것은 그 문제를 찾아오는 것과, 조용히 지구본을 방 한구석에 가져다놓은 것, 그리고 하늘마음이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준 것 뿐이었다. 그 다음은 학생의 몫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비로소 그 배움이 학생의 것이 될 수 있다. 하늘마음은 당시까지만 해도 수학을 지겨워하고 문제풀이를 어려워했는데, 이후에 나는 하늘마음이 검정고시 등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곰 문제를 스스로 풀지 않았느냐'라며 격려했고 그것은 하늘마음에게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후에 나는 '스스로 배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을 거듭 하게 되었다. 지식이라면 차고 넘쳐서 썩어나는 시대이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던 교육은 교과서 말고는 책을 구하기도 힘든 시대, 백년쯤 전에 성립한 방법론이었다. 그렇다면 지식을 외울 것이 아니라 지식이나 정보를 선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서 '읽기'가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로만 지식을 찾다 보면 결국엔 자료 습득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서 '영어'를 배워야 한다. 또한 그렇게 습득한 지식을 정리해 자신의 생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배워야 하고, 글 뿐만 아니라 이미지, 영상, 프레젠테이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팀원들과 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IT'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내가 내일학교에서 '독서, 글쓰기, 영어, IT'를 담당하고 있는 이유이다. 일반 학교에서는 각기 따로 떨어져 있는 과목이 사실은 '지식의 습득과 자기표현'이라는, 배움을 위한 하나의 기본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가 어떤 지식이나 지혜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운동선수가 경기에 임하기 전 최적의 준비가 될 수 있도록 몸만들기를 도와주는 트레이너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자람도우미가 그런 것은 아니고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이 그렇다. 배움은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고, 더욱 성장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고생을 감내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각오를 한 사람에게 비로소 가능한 것이고, 그렇기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그리고 '배울 각오'를 한 사람이 스스로 잘 배우기 위해서는 운동선수의 기초 체력처럼, '기초 배움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줄 알아야 하고, 글을 읽거나 영상을 볼 때 내용을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그렇게 습득한 지식이나 정보를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한발 더 나아가 함께하는 사람들과 협업을 통해 논의를 발전시키고 성과를 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하나라도 미비할 경우 앞으로 삶에서 두고두고 발목을 잡히게 된다. 그렇기에 청소년기란 이러한 능력을 습득하는 시기여야 한다. 이 능력들이 이후의 삶에서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이 시기에 무엇을 하느냐가 이후의 삶을 결정적으로 가름하기 때문이다.

 

내일학교 1기 졸업생들이 '국영수'를 펼쳐보지도 않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대학에서 올 A에 가까운 성적을 받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식을 배운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처럼 계량화된 점수로 자신이 현재 서 있는 지점을 알 수 없었기에, 조금 답답하고 불안했을 수 있다. 실제로 전인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자기 확신을 가지지 못하다가 떠난 학생과 학부모들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배움의 성과를 숫자로 환산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배움과 다른 사람의 배움을 비교해서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발상이 아닌가? 배움의 기쁨 자체를 박탈당했던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며,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같은 학교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더욱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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