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효용을 다한 이데올로기... 이제는 문화와 공동체의 시대"

 

내일학교 미래교육포럼: '인류학에 대하여' (이경덕 선생님)

 

내일학교에서는 매주 토요일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미래교육포럼’이 열립니다. ‘미래교육포럼’은 내일의 교육을 위한 모든 주제를 다루는 포럼으로, 내일학교의 학생들과 자람도우미(교사), 후원회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신화 읽어주는 남자'라는 별명을 가진,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의 이경덕 선생님이 인류의 역사와 신화,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미래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인류가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일까요? 구석기 시대예요. 구석기인들의 평균 키가 남자 176, 여자 165센티입니다. 요새 굉장히 잘 먹는데 이제야 겨우 따라잡았죠. 구석기 시대에는 쾌적한 동굴에서 살면서, 밖에는 동물들이 뛰어다녀요. 단백질이죠. 물 맑고 공기 좋고, 노동을 하지 않아도 돼요. 인류가 그려온 천국이란 구석기 시대입니다.”

 

구석기 시대가 지금보다 풍요로웠다고? 인류학에 대한 궁금증으로 자리에 앉은 내일학생들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지구인이 알아야 할 인류 문화 이야기’를 비롯하여 신화와 인류학에 관한 다양한 저서를 집필, 번역한 이경덕 선생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는 물질적 풍요를 이룬 현대인의 삶이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로 포럼을 시작했다. 철학을 전공하고 문화인류학을 통해 신화를 연구하는 그는 인류의 지혜는 다름 아닌 신화적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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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메두사 아시죠? 머리가 뱀으로 되어 있고 눈이 마주친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죠.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괴물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상징이죠. 원래 메두사는 굉장히 예쁜 여자였어요. 그냥 예쁘기만 한 여자가 아니라 아주 지적이고 능력있는.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런 여자들이 사회활동을 할 방법이 없었어요. 딱 하나, 신전의 무녀가 되는 방법이 있었죠. 그래서 메두사는 아테네 신전의 무녀가 됐어요. 그랬더니 그때부터 사람들이 신전에 몰려드는 거예요. 여신 같은 여자를 보려고. 말하자면 요즘의 연예인 같은 거죠. 티비 보면 여신급 미모라고들 그러잖아요. 사실 똑같아요. 드라마가 현대의 신화고, 연예인들이 신이고 여신인 거죠.

 

아무튼 메두사도 여자니까, 연애를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는 여신과 같은 존재라서 아무하고나 안 만나요. 연예인들도 재벌이나 스포츠 스타하고만 만나잖아요. 그것처럼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연애를 해요. 그러다보니까 메두사가 기고만장해진 거예요.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그래서 오만해진 나머지 신을 우습게 보고, 아테네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노닥거리다가 그만 아테네 여신의 분노를 사죠. 여신은 처녀신인데, 신성모독을 한 거예요. 그래서 분노한 여신이 메두사의 눈을 찢어버리고, 이빨은 날카롭게, 머리카락은 뱀으로 만들어버려요. 그때부터 메두사를 본 사람들은 돌로 변해버리고 말죠.

 

이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하죠. 신화란 실제로 있었던 얘기가 아니라, 상징인 거예요. 메두사처럼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는 줄 알았던 여자가, 최순실처럼 감방에 들어가요. 그러면 분노에 휩싸이겠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짜증내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겠어요. 너무 무서워서 그 앞에서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겠죠? 그러면 외톨이가 되는 거구요. 그래서 메두사는 저주와 증오, 고립과 단절의 상징이에요.

 

그러다가 페르세우스가 방패를 거울처럼 빛이 나게 닦아서 뒤를 돌아서는 메두사를 향해 가는 거예요. 메두사는 거울 같은 방패를 통해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봤겠죠.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쳐요. 그리고 그 피에서 태어난 게 페가서스, 날개달린 말이에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머리가 뱀이라든가 흘러내린 피에서 날개달린 말이 태어났다는 게 아니에요. 주인공도 메두사가 아니죠. 그건 기억하기 좋으라고 극적으로 만들어낸 장치죠. 주인공은 상징이에요.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처음으로 그 모습을 인정하는 거예요. ‘아, 내가 이랬구나.’ 그리고는 목이 잘려요. 과거의 자신이 죽는 거죠. 그리고 그 피 속에서 날개달린 말, 진정한 자유가 태어나는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이런 극적인 이야기 속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혜를 담아놨어요.”

 

이어서 이경덕 선생님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선녀와 나무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인어공주’와 같이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동화 속에 숨겨진 상징을 통해 인류가 후대에 남기고자 했던 지혜의 원형을 이야기해주었다. 내일학생들은 강의를 듣는다기보다는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빠져들었다. 이 선생님은 신화와 이야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울’처럼 인류학 역시 ‘타자’의 문화를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는 학문임을 역설했다.

 

“인류학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문화상대주의’입니다. 이것은 모든 문화가 그 나름의 지정학적, 역사적 조건 속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형성되었고, 그렇기에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내 문화만 옳고, 다른 놈들은 열등하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데 서양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에 자기만 옳다고 하는 과오를 많이 저질렀죠. 예를 들어서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장(天葬)이라고, 시체를 독수리가 먹게 하죠. 처음에 서양에서 이걸 보고 기겁을 했어요. 야만적인 사람들이라고 신문에 나고 그랬죠. 그런데 사실 티벳 고원은 너무나 건조해서, 사람을 땅에다 묻으면 썩질 않아요. 사람이 죽으면 사라져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까 독수리가 먹게 하는 거예요. 독수리는 하늘에서 온 존재니까, ‘우리는 하늘에 묻는다’라면서 멋있게 천장(天葬)이라고 하는 거죠. 티벳에서는 땅에 묻히는 사람은 죄수 뿐이에요. 영원히 죽음의 고통을 겪는 형벌을 주는 거죠. 우리한텐 당연한 게 그들에게는 저주가 되고, 우리가 보기엔 야만적인 풍습이 사실은 가장 합리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문화상대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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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이어진 인류의 역사와 문화, 고대와 중세, 근대를 아우르는 이경덕 선생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대로 이어졌다. 그는 인류가 자본주의를 통해 인류 역사상 없었던 풍요를 일궈냈고, 이러한 풍요를 통해 자연스럽게 문화가 꽃피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현대 문명을 비판하였다.

 

“자본주의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자본주의는 지금의 풍요를 일구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죠. 불과 일이백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 뭐 먹지?’ 혹은 ‘과연 내일 뭔가를 먹을 수는 있을까?’라고 고민하고 살았어요. 자본주의의 공으로 여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거죠. 그렇지만 뭐든 너무 오래되면 고장이 나고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에요. 자본주의도 풍요를 만들어 낸 지금은 바뀌어야 하는데 자본가들이 바뀌지 않고 있는 거죠. 자본가들이란 흔한 말로 아흔 아홉 개 가진 사람이 한 개 가진 사람 것 뺏어서 백 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죠. 신자유주의는 더 심하고요.

 

우리는 뒤늦게 근대화를 해서 서양을 따라가려고 하지만, 사실 서양에서는 자신들의 사고방식은 이미 효용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200년을 이성의 시대로, 자본주의의 시대로 살아봤더니 이건 아니더라. 행복하지가 않다. 그래서 ‘아시아적 가치’에 뒤늦게 주목하는 거죠.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가족은 해체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죠.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에서 가장 많은 게 1인 가구라고 하니까요.

 

이경덕 선생님은 학생과 자람도우미(교사), 학부모와 가족들이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고 있는 내일학교에 방문한 것도 문화인류학자로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가진 관심에서 기인했음을 말하기도 했다. 구석기 시대부터 신화가 살아 숨쉬던 고대, 종교와 역사, 전쟁과 혁명, 산업화와 현재 문명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일학생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의 사회와 문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으며,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 속에 담긴 인류의 지혜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에 대한 시각을 배웠다.

 

“요즘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공동체'예요. 이미 100년 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는데 혼술, 혼밥하면서 외롭고 쓸쓸하게 늙어 죽을 것인가, 아니면 모여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서로 힘을 북돋워주고 그렇게 할 것인가. 그 기로에 서 있는 거죠.”

 

문화인류학적으로 내일학교의 새로운 교육과 커뮤니티 문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경덕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내일학교의 커뮤니티 문화는 한계에 부딪힌 인류 문명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의미심장한 시도일는지도 모른다. 이번 미래교육포럼은 내일학생들에게 인간와 문명, 인류의 미래에 대한 많은 의문과 과제를 남겨주었다.

 

 

- 김가람(내일학교 자람도우미) garamworks (at) gmail.com

 

  • 하늘태양 2017.02.08 14:20

    정리가 정말 잘되어있네요 포럼때가 새록 새록 다시 생각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포럼도 정말 재미있고 새로웠습니다. 인류학은 제게 굉장히 낯설었던 것인데 이번 포럼을 들으면서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경덕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풀이들과 "나는왜 이것을 알고 있는가?" 에 대해 생각을해봐야 한다는 것은 제게 정말 확! 다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jarim 2017.03.08 21:19
    강의를 듣지는 못했지만, 인류가 안고 있는 새로운 과제로서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대해 그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2050 미래교육포럼

매주 토요일,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내일학교에 방문하여 포럼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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