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제주 어디를 가면 좋으냐고 물을 때 늘 망연자실해지곤 한다. 어디를 가면 좋냐니 어디나 다 좋은걸. 차를 타고 울창한 삼나무길을 달려도 좋고, 다랑쉬 오름이나 따라비 오름을 가도 좋고 비자림숲길이나 사려니 숲길도 좋고, 올레길을 걸어도 좋고 둘레길도 좋고. 샤랄라 원피스에 빼딱 구두를 신지 말고 운동화에 모자를 쓰고 걸어라. 걸어서 만나는 모든 곳에서 당신을 향한 위로를 발견할 것이다. 비가 오더라도 화창하더라도. 그것이 제주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내가 유독 좋아하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해질녁 섭지코지다. 해가지기 1시간전에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섭지코지해안로를 따라가다보면 기막힌 일몰을 볼 수가 있다. 습도가 어떤가에 따라 노을빛이 달라지는데, 운이 좋으면 고운 빛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천천히 일몰을 즐기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남빛 하늘이 쪽빛으로 점점점 바뀌고, 섭지코지의 등대쪽으로 향하는 발길이 더 차분해진다.
이윽고 등대 위에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일렁이는 잊었던 바람에 설레임과 그리움이 요동질을 친다.
내가 유독 이 코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치 명상의 과정과 비슷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좌정을 할 때, 각종 업무와 인간관계와 다양한 정보들과 그에 따라 움직였던 수많은 감정들이 올칼라로 화려하게 휘몰아친다. 그 색깔이 천천히 잦아들면서 자신과 만날 준비를 마친다. 색은 남빛에서 쪽빛으로 조금 있다가는 검은 빛으로. 점점 더 가라앉고 가라앉고. 그후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바램의 바람들. 순수한 꿈과 사랑들.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노래소리. 그것이 섭지코지의 바람처럼, 달처럼, 풀벌레 소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출사 때도 섭지코지는 나에게 그런 위로를 선물했다.
함께 했던 벗들의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도 참 좋았다.
가을에도 다시 가고 싶다.
그때는 돈을 좀 모아서 보즈 휴대용 스피커를 사고,
그걸로 김영동의 바람의 소리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