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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학교에는 프랑스에서 귀국한 손님 한 분이 온답니다. 바로 전인고등학교의 1기 졸업생인 유록 김지원님이에요. 아시다시피 전인고등학교는 설립자이신 자람지도 선생님과 내일학교의 여러 자람도우미 선생님들이 함께 세운 학교입니다. 유록님은 자람지도 선생님께서 직접 학생들을 지도하실 때 그 엑기스(?)를 듬뿍 받았던 학생이지요. 유록님은 전인고 졸업 후 프랑스로 건너가 손꼽히는 명문인 낭트 미술학교에 입학했답니다. 유록님을 못알아본 한국의 미대들이 참 못났지요... 지금은 낭트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 있어요. 유록님이 낭트 미술학교 재학중 썼던 유학기를 한번 보실까요?




안녕하세요. 전인고등학교 1기 졸업생 유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선생님들과 후배님들을 글로 찾아뵙게 되니 좀 쑥스럽네요.

전인고에서 배운 것들이 졸업 이후 제게 어떤 힘이 되어주었는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전인고에 들어오기 전의 저는 갈피를 못 잡는 학생이었어요.

막연한 불안감으로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낙오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 꿈이나 희망이라는 동력이 없는 상태였죠.

전교 15등 안팎의 성적이었지만 그냥 단지 남들이 봤을 때 이정도면 되었다 싶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의지도 욕심도 없는 텅 빈 나날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부모님을 통해 전인고를 알게 되었어요.

면접을 본 게 꽤 오래 되어서 어렴풋하지만 굉장히 절박하게 이 학교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나네요.

학교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스스로의 임계점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 혼자 나아가는 게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법을 배웠어요.

1학년 때 프로젝트 수업 위주라 불안해하던 친구들이 몇몇 학교를 떠나기도 했지만 저는 당장의 교과 공부보다 중요한건 제가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학년 1학기 때 스스로의 꿈을 찾아서 각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생각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막연하게 건축 관련 학과에 들어가면 어떨까 생각하던 저는 고궁을 돌면서 스케치를 하는 여행을 기획했었어요. 그런데 스케치를 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고 뭔가 표현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사실 어릴 때 맨 처음 가졌던 꿈이 화가와 작가였거든요 그 건축 관련 학과라는 것도 머리가 크면서 적당히 현실적으로 타협한 선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미술에 대해서 더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점점 이게 정말 나한테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 미술에서는 기술적으로 얼마나 잘 그리느냐 보다 그 속에 담고 있는 철학과, 의문 혹은 대답과, 세상을 보는 관점 같은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발견한 거죠. 물론 그걸 표현하는 표현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게 단지 연필이나 붓을 놀리는 표현력이 아닌 글과 영상 사진 소리 등 어떤 도구로든 적합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표현력이라는 걸 알고 한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2월 부터 본격적인 입시 준비 체제에 들어갔었고 서울대를 목표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서울대에서는 유일하게 포트폴리오를 심사한다는 게 가장 큰 지원 동기였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입시 미술이라는 게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학원에서 점심시간에 몰래 빠져나와서 근처에 있는 테디베어 교실에서 인형 같은걸 만들고 하던 게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포트폴리오라는 게 결국 실기력(즉 그림 잘 그리는 기술)을 최우선으로 본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런 포트폴리오가 한 장에 500만원씩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좀 속이 상했어요.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저는 그 해 입시에서 떨어졌어요(ㅋㅋ).

 

아는 언니의 소개로 미국 유학을 잠깐 준비하다가 비싼 학비와 생활비 등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중 알게 된 게 프랑스의 '주택보조금'이라는 제도였어요.

집세의 40%정도를 환급해주는 제도로 외국인들에게도 적용 된다는 사실을 알고 프랑스로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한국에서 포트폴리오 준비와 프랑스어 공부를 조금 하다가 21살 가을에 프랑스로 와서 어학연수를 시작했어요.

바다 건너에서 홀로 생활하는 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훨씬 더 힘들더라구요.

그때 어학원에 유학을 목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던 한국인이 저를 포함해서 8명이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저까지 2명이예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떠난 거죠. 처음 와서 몇 개월은 서류처리다 적응이다 해서 워낙 바쁘니까 금방 지나가는데 그 뒤로는 점점 한국이 그립고 외로워지고 어느 정도 늘던 프랑스어도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정말 힘들거든요.

어학 자격증 시험을 보고 학교에 원서 넣고 인터뷰 보러 다닐 때는 하루에도 몇 백 번씩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특히 가장 괴로운 시기였는데, 그 가장 힘든 시기에 전인고등학교에서 겪었던 일들과 힘껏 이겨낸 경험, 그로 인해서 얻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 해보는 일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따르잖아요. 그런데 전인고에서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과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때 그때 맞닥뜨렸던 불안과 그것을 극복했던 기억들이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하고 선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 결과 낭트 미술학교와 낭시 미술학교에 합격했고 지금은 낭트 미술학교에서 이번 가을에 2학년이 된답니다.

학교 자랑을 좀 하자면 낭트 미술 학교는 프랑스의 젊은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4대 학교 중 하나라고 해요.

프랑스의 미술 학교는 회화과 조소과 등이 따로 나눠져 있지 않아요. 낭트 미술학교는 데생과 회화 조각 등 전통적인 수업뿐만 아니라 사진, 퍼포먼스, 비디오, 소리 등의 수업이 있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보다 실험적이고 폭넓은 창조적 작업을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교수들은 열정적이고 따뜻한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요.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도 불필요한 권위가 없어서 격의 없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점도 좋구요. 같은 학년 친구들도 열의가 대단하고 다들 자기 작업에 진지하게 임해서 저도 자극 받으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입학금을 포함한 등록금은 1년에 70만원 정도고 집세를 포함한 한 달 생활비도 서울에서 자취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들어서 만족스러워요.(그래도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ㅠㅠ)

 

 

지금 학교에 계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요.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 느끼고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싹싹 긁어서 자기 것으로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치열하게 부딪히고 깨져보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고등학생이라는 위치가 사실 넘어지고 엎어지고 해도 되는 위치거든요. 옆에서 기다려주고 손잡아줄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들도 계시고요. 그렇게 겪고 보면 그게 나중에 큰 자산이 되더라구요



  • 하늘사랑 2014.12.22 12:10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넘어지고 부딪혀봐야 겠어요.
  • 충녕 2014.12.22 12:33
    글 잘보았습니다.^___^
    지금의 학생들과 부모님들에게 유용한 정보도 되고...학생들이 내일학교를 다니면서 무엇을 더 배워하는지... 명확하게 풀어주신 것 같아요. 참 고맙고도 따뜻한 글이네요. 처음 시작은 늘 두렵다는 것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어른도 학생도 다 마찬가지~~~^___^
  • 기쁜빛 2014.12.22 14:12
    유록님이 온다니 정말 반갑네요!! 우와~~ 프랑스의 유명한 낭트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성공적으로 유학생활을 마쳐서 저도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네요!! (방 따뜻하게 해놓고 있을게요ㅎㅎ 어여와요~~)
  • 하늘마음 2014.12.22 14:25
    프랑스에서 성공적으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니 대단하네요~!! 봉화는 매우 오랜만일텐데.. 환영해요~!! ^^
  • 제현 2014.12.22 18:09
    들은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유학시절 작품전시회를 하는데, 프랑스는 작품에 작가의 생각도 써 놓고 하나봐요. 그런데 그 글을 본 지도교수왈, 프랑스인보다 프랑스어를 더 아름답게 구사하는 학생이다라고 말을 했데요...어느 영국교수는 자기와 같이 전시회하자고 그랬다는데...여하튼 이 모든 것이 끊임없이 습작으로 그림그리고 그 아래 글을 써 붙이던 전인고에서 생활하던 모습과 오브랩되네요...전인고 초기에는 이런 작업을 많이 했죠.. 지금 내일학생들도 계속 이 작업을 하고 있죠
    그런 면에서 내일학생들은 모두 잠재적으로 훌륭한 예술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성심 2014.12.22 22:26
    와~ 유록님이 방문한다니 참 반갑네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 궁금...
  • 행복 2014.12.24 10:49
    글을 읽다가,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펴졌다 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추억의 힘을 갖고 이겨냈을까?
    진정한 마음의 힘을 기른다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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